남편과 아들이 폭탄 테러로 죽었다. 그런데 경찰은 남편의 범죄 경력을 파고든다. 〈심판〉의 카티야가 알고 싶은 것은 누가 가족을 죽였느냐는 것인데, 수사는 남편 누리가 전에 드나…
남편과 아들이 폭탄 테러로 죽었다. 그런데 경찰은 남편의 범죄 경력을 파고든다. 〈심판〉의 카티야가 알고 싶은 것은 누가 가족을 죽였느냐는 것인데, 수사는 남편 누리가 전에 드나들던 마약 범죄의 세계로 향한다. 함께 살던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것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운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까지 다시 설명해야 한다.
파티 아킨은 이 여자가 재판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길게 따라간다. 용의자가 붙잡히면 해결될 것 같은 일이 법정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누리의 과거에 이어 카티야의 약물 사용까지 문제가 된다. 그동안 곁에서 지켜본 사람을 이제 다른 이들이 평가하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누리의 과거를 숨겨놓고 나중에 폭로하지 않는다. 첫머리부터 교도소에서 결혼하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다이앤 크루거가 연기하는 카티야에게 누리는 함께 살고 싶은 남자다. 그가 수감된 장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만으로도 둘의 관계와 그 관계를 둘러싼 사정을 한꺼번에 알게 된다.
이 결혼식은 휴대전화로 남긴 영상처럼 제시된다. 감독은 가족 영상을 찍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정해두었다고 설명했다. 결혼식에서는 교도관이 카메라를 맡는다. 결혼하는 당사자는 두 사람이지만 그 순간을 남기려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한다. 교도소라는 장소의 제약 속에서도 기념하고 싶은 날이 있다는 사실이 짧은 영상에 담긴다.
수사 과정에서 누리의 범죄 경력이 거론될 때, 관객에게는 교도소에서 결혼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가 수감됐다는 사실과 카티야가 그와 함께 살기로 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알고 있는 셈이다. 과거를 모르는 채 억울함에 동참하도록 만들지 않고, 그 과거를 품고 살아온 가족의 일을 먼저 보여준다.
경찰은 누리가 전에 저지른 범죄와 관련된 사람들을 살핀다. 카티야는 남편과 아들의 죽음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다려야 한다. 범인을 찾는 과정이 곧바로 유가족에게 안도감을 주지는 않는다. 죽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을 했는지가 수사의 중심에 놓이기 때문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그는 독일의 네오나치 조직 NSU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조사하며, 수사가 오랫동안 피해자들이 속한 이주민 공동체 안을 향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마약이나 도박과 관련됐을 것이라는 의심이 피해자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감독은 실제 사건의 가해자보다 남겨진 사람에게 집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심판〉은 그 사건의 인물과 경과를 그대로 옮긴 기록은 아니다. 카티야와 누리라는 가족의 이야기 안에서, 피해자의 과거가 사건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선택될 때 생기는 일을 보여준다. 카티야가 기억하는 남편과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남편은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쪽의 이야기를 먼저 듣느냐에 따라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다. 영화는 가족의 시간을 먼저 보여준 뒤에 그 간격을 벌린다.
친구와 가족은 카티야를 돕고, 누리의 친구이기도 한 변호사 다닐로는 재판에서 그의 편에 선다. 그에게 아무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어도 카티야가 직접 견뎌야 하는 순간은 남는다. 다른 사람이 절차를 설명하거나 대신 말해주는 것과,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재판에서는 네오나치 부부를 향한 증거가 제시되는 한편, 누리의 범죄 경력과 카티야의 약물 사용도 다시 거론된다. 카티야는 가족을 죽인 사람들의 책임을 묻고 싶은데, 자신이 살아온 방식까지 판단의 대상이 된다. 집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의 이야기를 법정에서 듣는 일에는 이런 낯섦이 있다. 익숙한 사실인데도 그것을 말하는 사람과 말하는 목적이 달라져 있다.
아킨은 공동각본을 쓴 하르크 봄과 함께 실제 NSU 재판을 방청했다. 법률가이기도 한 봄은 영화의 법정 장면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두 사람은 방청한 내용과 사건 자료를 논의하며 법정 장면을 준비했다. 촬영에 들어가서는 재판의 내용과 카티야의 반응을 함께 보여주는 일이 남았다.
감독은 촬영하면서도 이 부분을 걱정했다고 말했다. 앞부분에서 크루거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는 장면을 연기했지만, 법정에서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주위 사람들은 길게 말하고 전문적인 설명을 이어간다. 대사를 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가기 쉬운 상황에서, 듣고 있는 카티야가 여전히 장면의 중심에 있어야 했다. 울음을 더 크게 터뜨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연기의 과제다.
크루거는 배역을 준비하며 자녀를 잃은 여성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도 공격 자체만큼이나, 남겨진 사람들이 그 뒤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는지였다. 이 준비를 알고 보면 법정의 침묵을 그저 감정을 줄인 연기라고 부르기 어렵다. 말을 하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카티야에게는 계속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남편과 아들에 관한 설명을 듣는 일이 다시 자신에게 닥치는 사건이 된다.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정의가 왜 절실한지, 〈심판〉은 범인과 피해자의 대결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함께 살던 사람을 기억하고, 도움을 받으려 애쓰고, 남들이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카티야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서둘러 예상하기보다 그에게 차례로 닥치는 일을 따라가면, 법정의 대사 사이에서 한 사람의 표정을 계속 찾게 된다.
◆ 가족 영상의 카메라를 든 사람 — 첫 결혼식 영상에서는 교도관이 카메라를 맡고, 뒤에는 누리가 직접 가족을 찍는 대목이 나온다. 누가 찍고 누가 찍히는지 보자. 사진 속 한 사람으로만 기억되기 쉬운 누리에게도 가족을 바라보던 시선이 있었다. 영상에 남은 얼굴뿐 아니라 그 얼굴을 남겨준 사람을 생각하면, 짧은 기록 안에서 함께 살아온 관계가 더 많이 보인다.
◆ 이미 알고 있던 누리의 과거 — 교도소의 결혼식에서 알게 된 사정이 수사와 재판에서는 어떻게 다뤄지는지 살펴보자. 영화는 누리에게 흠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카티야의 편을 들도록 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 과거와 함께 가족으로서의 모습도 보았다. 같은 사람에 관한 사실 가운데 무엇이 선택되고 어떤 목적에 쓰이는지 따라가면, 카티야가 듣는 말의 부담을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 — 친구와 가족, 변호사 다닐로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카티야를 돕는다. 누가 가장 좋은 위로를 하는지 고르기보다, 도움을 받은 뒤에도 카티야가 직접 마주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보자. 누리의 친구였던 다닐로는 법정에서 그를 대변하기도 한다. 함께 아는 사람의 죽음을 놓고도 두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에 관심을 둘 만하다.
◆ 말하는 얼굴과 듣는 얼굴 — 법정에서는 길게 설명하는 사람이 화면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설명을 듣는 카티야에게 시선을 옮겨보자. 새로운 사실을 전하는 대사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표정이 한 장면 안에 있다. 카티야가 대답하는 때만 기다리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가족을 잃은 사람이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 〈체실 비치에서〉 — 도미닉 쿡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다룬다. 둘만의 친밀한 일에도 그동안 배운 규범과 기대가 따라 들어온다. 사건의 규모는 전혀 다르지만, 개인의 감정을 그 사람만의 문제로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 아담 스미스의 영화에서 차드는 아버지에게 배운 범죄 생활을 아들에게까지 이어주고 싶지는 않다. 가족을 지킨다는 말이 아버지와 아들에게 서로 다른 뜻을 갖는다. 과거의 범죄와 현재의 가족 관계를 한 가지 설명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인물을 더 만나보고 싶다면 이어볼 만하다.
◆ 〈나폴리: 작은 갱들의 도시〉 — 클라우디오 조반네시는 좋은 옷을 입고 대접받고 싶은 소년들이 범죄에 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들이 바라는 생활과 그것을 얻으려고 택하는 일이 가까이 놓인다. 범죄라는 결과로 인물을 한꺼번에 묶기 전에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원하며 살았는지 보게 하는 영화다.
──────────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