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한 세트가 비어 있었다. 로저 코먼이 더 레이븐 촬영을 마치고 AIP(아메리칸 인터내셔널 픽처스)의 고딕 성 세트 계약 기간이 이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
1963년, 한 세트가 비어 있었다. 로저 코먼이 더 레이븐 촬영을 마치고 AIP(아메리칸 인터내셔널 픽처스)의 고딕 성 세트 계약 기간이 이틀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촬영이 끝난 직후였다. 코먼은 지체하지 않았다. 배우들을 붙잡고, 시나리오 없이 카메라를 돌렸다. 보리스 칼로프는 이미 자리에 있었다. 잭 니콜슨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틀간의 촬영이 훗날 다섯 명의 감독 손을 거쳐 The Terror라는 영화로 완성된다.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기이한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 고딕 호러는, 바로 그 혼돈 덕분에 지금도 살아남아 있다.

로저 코먼의 영화 제작 철학은 단순하다.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쓴다. 남은 세트, 남은 배우, 남은 시간. 이 방법론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실현된 사례가 바로 《The Terror》다.
1963년 초, 코먼은 빈센트 프라이스와 피터 로리, 그리고 보리스 칼로프를 주연으로 더 레이븐을 촬영했다. AIP와의 계약에 따라 고딕 성 세트는 일정 기간 임대된 상태였고, 《더 레이븐》 촬영이 예정보다 일찍 마무리되면서 세트 계약 기간이 이틀 남는 상황이 벌어졌다. 코먼에게 이틀은 충분했다. 그는 촬영장을 철수하는 대신 새 영화를 시작했다.
각본은 없었다. 대신 기본적인 설정이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프랑스 장교 앙드레 뒤발리에(잭 니콜슨)가 전장에서 미아가 되어 신비로운 여인을 쫓다 으스스한 성에 도달하고, 그곳의 주인 폰 레페 남작(보리스 칼로프)과 얽히는 이야기. 코먼은 이 뼈대만 가지고 칼로프와 니콜슨의 장면들을 이틀 만에 찍어냈다. 물론 이틀 만에 완성된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시작이었고,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촬영이 종료되었다.
코먼은 이후 자신의 조감독과 동료 감독들에게 영화 완성을 맡겼다. 촬영 방식은 이랬다. 코먼이 핵심 장면을 찍은 뒤, 그 장면들을 연결할 추가 장면들을 다른 감독들이 분담해서 찍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영화의 제작 기간은 수개월로 늘어났고, 감독의 수도 다섯 명에 달했다. 그 결과물이 어떤 미학적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이것은 애초에 목표가 아니었다. 코먼의 목표는 세트 임대료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The Terror》는 단일 감독 작품이 아니다. 최소 다섯 명의 감독이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장면을 찍었고, 그 조각들이 하나의 영화로 편집되었다.
코먼이 핵심 장면들을 찍은 이후,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일련의 젊은 감독들에게 넘겨졌다. 당시 코먼의 조수로 일하며 영화계에 막 발을 들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일부 장면을 연출했다. 몬테 헬먼 역시 세 편의 독립 영화를 만들기 전 이 작품에서 일부 시퀀스를 담당했다. 잭 힐도 추가 장면 연출에 참여했고, 심지어 잭 니콜슨 본인도 일부 장면을 감독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코폴라와 헬먼이 할리우드에서 경력을 쌓기 전 통과한 수련장이었다.
이 다중 감독 구조가 만들어낸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내러티브의 분절이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논리적 인과가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여러 번 나타난다. 캐릭터의 동기가 갑자기 달라지거나, 공간적 연속성이 끊기거나, 분위기가 예고 없이 전환된다. 이것은 편집의 실패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불일관성이 영화 전체에 어떤 꿈의 논리 같은 것을 부여하기도 한다. 일관된 각본이 없으므로, 이야기는 꿈처럼 이어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 없이, 그냥 일어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훗날 영화 역사의 흥미로운 각주가 되었다. 1972년 대부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지옥의 묵시록(1979)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는 감독이 초창기에 코먼의 B급 공장에서 심부름을 하며 영화를 배웠다는 사실. 코먼의 주변에서 자란 인재 목록에는 코폴라뿐 아니라 마틴 스콜세지, 조나단 드미, 론 하워드가 포함된다. 《The Terror》는 그 수련 기간의 기록 중 하나다.
《The Terror》에는 두 가지 시대가 공존한다. 보리스 칼로프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 황금기의 살아있는 기념비였고, 잭 니콜슨은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신인이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프레임 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를 독특한 역사적 문서로 만든다.
1963년의 보리스 칼로프는 75세였다. 1931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공포 영화의 아이콘이 된 지 3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는 이미 수십 편의 공포 영화에 출연한 베테랑이었고, 더 레이븐에서도 공연한 직후였다. 칼로프가 코먼의 저예산 프로젝트에 계속 출연한 것은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일하기를 좋아했고, 공포라는 장르를 진지하게 다루었다. 《The Terror》에서 그가 연기하는 폰 레페 남작은 무언가 깊은 죄책감과 비밀을 안고 사는 인물로, 칼로프는 특유의 단아하고 절제된 연기로 이 역할에 무게를 실어준다. 시나리오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도 그의 존재 자체가 영화의 격을 유지한다.
반면 잭 니콜슨은 1963년 당시 26세의 거의 무명 배우였다. 코먼의 저예산 영화들에서 경험을 쌓던 그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장교 앙드레 뒤발리에를 연기했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군복을 입고 신비로운 여인을 쫓는 이 역할에서 니콜슨은 아직 나중에 이지 라이더(1969)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에서 폭발하게 되는 카리스마를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과 다소 과잉된 에너지는 이미 이 시기부터 보인다.
칼로프와 니콜슨의 공동 연기 장면들은 영화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경험 많은 노장과 기세등등한 신인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두 캐릭터 사이의 불신과 의구심이라는 드라마적 요소와 우연히 겹치며 진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는 그 짧은 이틀 동안 찍힌 두 배우의 장면에서 가장 살아있다.

《더 레이븐》 세트는 원래 에드거 앨런 포의 세계를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기울어진 계단, 촛불이 흔들리는 회랑, 두꺼운 돌벽처럼 보이는 구조물들 — 이 모든 것이 코먼의 B급 공장이 만들어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고딕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 세트를 그대로 물려받은 《The Terror》는 의도치 않게 시각적으로 중후한 배경을 얻었다.
AIP(아메리칸 인터내셔널 픽처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포 원작 공포 영화 시리즈를 양산했다. 코먼이 연출하고 빈센트 프라이스가 주연한 이 시리즈는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세심하게 제작된 고딕 세트를 특징으로 했다. 공포의 집(House of Usher, 1960), 진자와 구덩이(The Pit and the Pendulum, 1961), 까마귀(The Raven, 1963) 등이 그것이다. 색채 촬영을 위해 설계된 이 세트들은 Panavision 렌즈로 촬영되었고, 조명 처리에도 공을 들였다. 《더 레이븐》 세트는 그 시리즈 중 하나였다.
The Terror가 흑백이 아닌 컬러로 촬영된 것도 이 세트의 분위기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어두운 청록빛과 붉은 기운이 뒤섞인 고딕 성의 색감은, 내용의 빈틈을 시각적으로 채워준다. 이야기가 어디를 향하는지 불분명한 순간에도, 화면 자체는 불안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것은 전략이 아니라 우연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역사에서 우연이 만들어낸 미학은 의도가 만든 미학보다 종종 더 오래 살아남는다.
성 외부의 해안 장면들은 세트가 아닌 실제 로케이션에서 촬영되었다.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의 바위와 파도가 등장하는 이 장면들은 세트의 인공적인 분위기와 대비되며 독특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닫힌 세트의 답답함과 열린 자연의 광활함이 교차하면서, 탈출하고 싶지만 이끌리고 있는 주인공의 내부 갈등을 무의식적으로 시각화한다.
《The Terror》의 줄거리는 일관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다섯 감독이 저마다의 시점으로 찍은 장면을 이어 붙이자, 영화는 어느 순간 꿈의 논리를 따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묘한 매력이다.
나폴레옹 전쟁 직후, 앙드레 뒤발리에는 황량한 해안에서 신비로운 여인 헬레네를 만난다. 그녀는 그를 향해 걷다 사라진다. 그는 그녀를 쫓는다. 폰 레페 남작의 성에서 그는 헬레네의 비밀, 남작의 과거, 그리고 성을 뒤덮은 저주와 맞닥뜨린다. 이 도식 자체는 고딕 로맨스의 전형이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각 장면은 이 도식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논리로 흘러간다. 등장인물의 행동이 전 장면과 다소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지거나, 새로운 설정이 충분한 준비 없이 등장하거나,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느슨하게 연결된다.
그런데 이 느슨함이 만들어내는 효과가 흥미롭다. 완벽하게 짜인 공포 영화는 관객에게 공포를 '설명'한다. 무엇이 왜 무서운지, 어떤 법칙으로 괴물이 움직이는지를 알려주며 공포를 통제한다. 그러나 《The Terror》에서는 규칙이 불명확하다. 헬레네가 진짜인지 환상인지, 남작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저주의 실체가 무엇인지 — 이 모든 것이 끝까지 명확히 해소되지 않는다. 관객은 방향을 잃은 주인공과 함께 불확실성 속을 헤맨다. 그 감각이 때로 진짜 불안으로 전환된다.
이것은 물론 의도된 미학이 아니다. 코먼도, 다른 감독들도 이 영화를 철학적 불확실성의 실험으로 구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물이 우연히 그런 효과를 냈다는 사실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기술적 한계'와 '미적 혼돈'이 때로 독창성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대의 컬트 영화 팬들이 이 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결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결함 때문이기도 하다.

2026년의 관객에게 《The Terror》를 권하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 그 이면의 날것 그대로의 실상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다. 예산은 없었고, 시간은 이틀이었고, 각본은 미완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만들어졌고, 개봉되었고, 60년이 넘도록 살아남았다.
로저 코먼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B급 영화의 교주이자 할리우드 뉴웨이브 세대를 키워낸 스승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그의 제작 방식(극단적 저예산, 극단적 효율, 그리고 젊은 재능에 대한 과감한 기용)은 스튜디오 시스템이 닫아놓은 문을 옆으로 돌아서 열어젖히는 방법이었다. 《The Terror》는 그 방법론의 가장 순수한 증류물이다.
잭 니콜슨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어떤 현장에서 처음 카메라를 잡았는지를 직접 목격하고 싶다면 이 영화는 그 현장이다. 대부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감독들이 남은 세트에서 다른 감독 영화의 추가 장면을 찍던 시절 — 그 시작점이 여기 있다. B급 영화는 재능의 무덤이 아니라 수련장이었다. 그 사실을 《The Terror》만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드물다.
◆ 칼로프의 첫 등장 장면 — 폰 레페 남작이 처음 나타나는 방식에 주목하라. 시나리오의 지원 없이 오직 배우의 존재감만으로 캐릭터의 무게를 확립하는 보리스 칼로프의 기술이 여기 있다.
◆ 해안 장면들의 빛 — 세트와 로케이션이 교차하는 순간, 화면의 색감과 질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라. 두 종류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불연속성이 영화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 니콜슨의 눈빛 — 훗날 그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알고 보면, 1963년의 이 눈빛에서 이미 그 싹이 보인다. 이지 라이더로 폭발하기 6년 전의 얼굴이다.
◆ 장면 사이의 단절 — 이야기의 논리가 흔들리는 순간을 찾아보라. 그 균열들이 어느 감독에서 다음 감독으로 넘어가는 접합점일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는 다섯 감독의 솔기를 직접 읽을 수 있는 교과서다.
◆ 결말의 처리 — 코먼식 고딕의 결말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작부터 예고된 것이었는지를 되짚어 보라. 시나리오가 없었음에도 이야기의 어떤 고딕적 논리는 관통한다.
◆ Dementia 13 (1963)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감독 데뷔작이자 로저 코먼이 제작한 고딕 호러. The Terror와 같은 1963년, 같은 코먼 사단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코먼의 현장에서 자란 코폴라의 실제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다.
◆ House on Haunted Hill (1959) — 빈센트 프라이스가 주연한 저택 고딕 호러. 저예산 공포 영화가 세트와 분위기만으로 긴장을 빚어내는 방식이 The Terror가 물려받은 미학과 맞닿아 있다.
◆ The Wild Ride (1960) — 아직 무명이던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은 초기작. 《The Terror》에서 군복을 입고 고딕 성을 헤매던 니콜슨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잇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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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