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찍고 남은 세트가 다른 영화의 성이 된다. 로저 코먼의 〈테러〉는 이전 AIP 공포 영화의 세트를 다시 활용하고, 여러 사람의 추가 촬영을 거쳐 완성됐다. 이미 있…
영화 한 편을 찍고 남은 세트가 다른 영화의 성이 된다. 로저 코먼의 〈테러〉는 이전 AIP 공포 영화의 세트를 다시 활용하고, 여러 사람의 추가 촬영을 거쳐 완성됐다. 이미 있는 공간에서 다음 영화를 시작하는 제작자의 계산이 이 고딕 호러의 출발점에 있다.
그 성에 들어갈 이야기는 해안에서 시작한다. 길을 잃은 프랑스 장교 안드레는 낯선 여인을 만난다. 여인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녀를 찾아간 성에는 꼭 닮은 얼굴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런데 성주는 그림 속 여자가 오래전에 죽은 자신의 아내라고 말한다. 안드레가 방금 본 사람과 성주가 기억하는 죽은 사람은 어떻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잭 니콜슨이 연기하는 안드레는 처음부터 성의 비밀을 파헤치러 온 탐정이 아니다.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인 그는 지쳐 쓰러졌다가 헬렌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샌드라 나이트가 맡은 헬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면서도 자신의 정체를 알 만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녀를 다시 보려는 마음이 안드레를 낯선 성까지 데려간다.
초상화는 흩어져 있던 의문을 한곳에 모은다. 안드레에게는 살아 있는 여인을 보았다는 경험이 있고, 폰 레페 남작에게는 아내가 죽었다는 설명이 있다. 그림은 두 사람의 말을 연결하면서도 모순을 드러낸다. 초상화 속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부터, 안드레는 여인의 행방뿐 아니라 남작이 들려주는 과거도 의심해야 한다.
이때 영화가 붙잡는 것은 유령의 존재만이 아니다. 자신이 본 것을 믿으려는 방문객과 더 묻지 말고 떠나라는 성주의 대립이다. 안드레에게 성은 답을 찾아야 할 장소이고, 남작에게는 낯선 사람의 질문을 막아야 할 장소다. 같은 문을 두고 한 사람은 들어가려 하고 다른 사람은 돌려보내려 한다.

보리스 칼로프가 남작을 연기한다. 니콜슨의 젊은 장교와 칼로프의 늙은 성주를 마주 세우는 것만으로도, 과거를 모르는 사람과 그 과거를 움켜쥔 사람의 차이가 드러난다. 누가 더 위협적인 표정을 짓는지보다 누가 질문하고 누가 대답을 피하는지를 따라가면 두 배우의 만남이 이야기 안에서 더 선명해진다.
안드레는 남작을 만났다고 곧바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헬렌을 보았다는 말은 성주가 내놓는 설명과 맞지 않고, 성을 떠나라는 요구는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 젊은 군인의 행동력이 여기서는 쉽게 통하지 않는다. 길을 찾아 성까지 왔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해안과 실내를 오가는 화면도 두 종류의 막막함을 보여준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해안은 시야가 트여 있어도 여인의 행방을 붙잡아주지 않는다. 성 안에서는 상대와 마주 서서 질문할 수 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렵다. 바깥에서는 사람을 놓치고 안에서는 설명에 가로막히는 안드레의 처지가, 넓은 풍경과 문으로 나뉜 공간을 이어준다.

성의 내부를 보면서 이 공간이 다른 영화에도 쓰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만하다. 세트를 재사용하면 새로 짓는 수고를 덜 수 있지만, 벽과 문이 있다고 그 안에서 벌어질 사건까지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테러〉의 제작 일화가 흥미로운 까닭은 남은 공간을 발견한 순간보다, 거기서 시작한 영화를 완성하는 데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는 데 있다.
코먼은 훗날 이 영화를 회고하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몬테 헬먼, 잭 힐이 일부 장면을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감독으로 표기된 사람은 코먼이지만, 제작 과정은 그 이름 하나보다 복잡했다. 다만 참여 사실만으로 각 장면의 연출자를 알아맞힐 수는 없다. 장면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감독이 바뀐 흔적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다.
이 사정을 알고 보면 성을 꾸민 세트, 해안에서 찍은 장면, 두 배우가 마주한 순간을 한 편에 모으는 일이 눈에 들어온다. 제작 일화는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더해준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연결이 충분한지, 인물의 선택이 이해되는지까지 대신 답해주지는 않는다. 남은 재료로 영화를 완성한 끈기와 완성된 영화의 성취는 각각 살펴볼 만하다.
〈테러〉에는 오래된 성을 보는 재미와 그 성을 다시 쓰는 영화인들을 생각하는 재미가 함께 있다. 화면 안에서는 안드레가 초상화의 주인을 알아내려 하고, 화면 밖에서는 코먼과 동료들이 이미 마련된 공간으로 새 영화를 만든다. 한쪽의 수수께끼를 따라가면서 다른 쪽의 제작 사정도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니콜슨과 칼로프를 후대의 명성만으로 비교하기보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방문객과 그를 내보내려는 성주로 먼저 만나보자. 두 사람이 왜 같은 성에서 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지 붙잡으면, 배우들의 이름과 기이한 제작 일화에 가려져 있던 영화 속 대립이 보인다. 해안에서 만난 얼굴 하나가 성의 오래된 사정을 흔들기 시작한다.
◆ 〈Dementia 13〉 (1963,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 코먼의 제작 지원 아래 만들어진 초기 공포 영화다. 아일랜드의 저택과 가족의 사정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이며, 〈테러〉와 함께 상영되기도 했다. 낯선 성주의 과거를 캐묻는 안드레와 달리, 재산을 둘러싼 계산이 가족 안의 대화에 끼어든다. 오래된 저택의 비밀에 접근하는 인물의 목적이 달라지면 긴장도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기 좋다.
◆ 〈House on Haunted Hill〉 (1959, 윌리엄 캐슬) — 부호가 손님들에게 저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여인을 찾아 성에 들어간 〈테러〉의 안드레와 달리, 이곳의 손님들은 머물러야 할 조건을 미리 안다. 유령이 나올 듯한 집이라는 공통 배경에, 답을 얻으려는 방문과 보상을 받으려는 체류라는 다른 동기가 놓인다. 집을 떠날지 남을지 결정하는 이유를 비교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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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