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는 있고 함께 일할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 장비로 찍을 자기 영화가 아직 없다. 유럽 촬영을 마치던 젊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 틈에서 기회를 찾았다. 제작자를 설득할 …
장비는 있고 함께 일할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 장비로 찍을 자기 영화가 아직 없다. 유럽 촬영을 마치던 젊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 틈에서 기회를 찾았다. 제작자를 설득할 이야기를 생각해내면, 다른 사람의 영화에서 일하던 조수가 자기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허락을 받은 뒤에도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일랜드에서 촬영하는 동안 그는 밤마다 각본을 썼다.
코폴라의 초기 장편 데멘시아 13은 1963년에 공개됐다. 오래된 성과 호수, 가족의 유산을 둘러싼 계산과 도끼 살인이 얽힌 공포영화다. 코폴라가 이 작품을 돌아보며 말한 경험에는 배워서 맡은 일, 찍으며 쓴 이야기, 편집자에게 배운 장면의 처리가 함께 있다. 감독이라는 이름을 처음 얻는 일이 현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두 안다는 뜻은 아니었다.
로저 코먼과 일하기 시작한 코폴라는 조수로 여러 일을 맡았다. 촬영장에서는 배우들과 대사를 연습하고 장면을 준비했고, 그 밖의 잡무도 했다. 코먼이 유럽에 데려갈 녹음 담당자를 찾자 그는 녹음기에 관한 책을 읽고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영 레이서스의 유럽 촬영에 참여하게 된 계기다.
코먼은 이미 사람과 장비가 모인 곳에서 영화를 더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비를 아꼈다. 코폴라는 그 장비를 맡아 자기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준비했다. 나중에 회고한 기획의 출발은 한 쪽짜리 이야기였다. 촬영을 시작한 뒤에는 밤에 쓴 각본을 등사해 배우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허락을 얻는 일 다음에는 다음 날 찍을 장면을 마련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조건을 알면 초기작의 재미를 다른 곳에서도 찾게 된다. 거대한 제작 계획보다 당장 만날 배우와 사용할 장소, 오늘 쓴 대사를 어떻게 화면으로 만들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이야기도 성과 호수, 그곳에 모이는 가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정된 장소에서 인물마다 다른 목적을 갖게 하면 같은 공간에 들어가는 이유도 달라진다.
루아나 앤더스가 맡은 루이즈는 남편 존과 가족의 유산 문제로 다툰다. 그때 존이 심장마비로 죽는다. 루이즈는 남편이 먼저 죽으면 자신이 유산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그의 죽음을 숨긴다. 관객에게는 이미 알려진 일을 다른 가족들은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이 모이는 데에는 오래된 이유도 있다. 할로란 부인은 호수에서 익사한 딸 캐슬린을 잊지 못하고, 가족은 기일을 함께 보낸다. 루이즈는 죽은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것처럼 꾸며 부인에게 영향을 주려 한다. 자신에게 닥친 죽음은 감추면서,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죽음은 이용하려는 계획이다.
그래서 이 집의 미스터리는 관객이 아무것도 모르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루이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채, 그 거짓말이 가족에게 어디까지 통하는지 보게 된다. 가족의 슬픔과 루이즈의 이익이 같은 아이의 기억을 둘러싼다. 여기에 실제 살인이 끼어들면서 루이즈가 계획한 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위험이 생긴다.
호수도 한 가지 역할로 머무르지 않는다. 루이즈에게는 남편의 죽음을 숨기는 곳이고, 가족에게는 아이를 잃은 장소다. 같은 물을 두고 어떤 사람은 감추려 하고 어떤 사람은 기억하려 한다. 공간을 반복해서 보여줄 때 그곳과 관계된 사람의 목적을 함께 보면, 성과 호수가 단순히 음산한 배경보다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코폴라는 훗날 이 영화의 좋은 부분 가운데 상당수가 편집을 도운 모트 터버의 기여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찍어온 장면을 그가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감독의 머릿속에 있던 영화와 촬영한 재료로 실제 이어붙일 수 있는 영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도움을 받아 그 차이를 알아가는 것도 이 초기작의 제작 과정이었다.
대사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게 돌아봤다.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에 좋아한 테네시 윌리엄스를 흉내 낸 글이 기대에 못 미쳤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문장을 닮게 쓰는 것과 자기 인물에게 필요한 말을 만드는 일이 같지는 않았던 셈이다. 그가 뒤늦게 초기작에서 발견한 것은 이미 완성된 자기 양식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따라 하다 충분히 바꾸어내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이 회고는 영화를 보며 대사와 이미지의 관계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인물이 말로 설명하는 사정이 이미 행동이나 장소에서 드러나 있는지, 말을 듣고 나서야 관계가 달라 보이는지 살필 수 있다. 성의 장식과 인물의 얼굴이 많은 것을 보여주는 영화에서, 대사는 그 이미지에 어떤 정보를 더하는가. 감독이 나중에 아쉬워한 지점도 관객이 직접 판단할 질문이 된다.
코폴라는 후대의 복원에도 참여했다. 보존 담당자는 원래 네거티브의 일부가 사라져 복제 자료 가운데 쓸 만한 것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자신의 처음 편집본에는 없었지만 나중에 더해졌던 일부 화면을 덜어냈다. 코폴라 역시 코먼이 살인 장면과 길이를 더 원했던 개봉 당시의 요구를 돌아보며, 다시 편집한 판본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필름을 복원하는 일과 감독이 다시 편집하는 일은 여기서 함께 진행됐다. 화면 손상을 보완하는 작업이 있는 한편, 어떤 장면을 남길지 선택하는 작업도 있었다. 그러므로 상영본의 차이를 확인하면 초기작이 거친 길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자기 초기작을 고치는 감독에게도 그 작품은 한때 끝난 과거만은 아니다. 만들 당시에는 충분히 해내지 못했던 것과 지금도 마음에 드는 장면이 함께 남는다. 코폴라가 편집자의 도움을 기억하고 대사를 다시 평가하는 태도는, 첫 기회를 잡은 열정만큼이나 이 영화를 통해 알아볼 만한 모습이다.
유산을 노리는 여자가 다른 가족의 슬픔을 이용하려 한다는 설정만으로도 따라갈 긴장이 있다. 관객은 루이즈의 거짓말을 알고 있지만 집안에서 벌어질 일까지 알지는 못한다. 성 안의 사람들을 모두 같은 용의자로 보기보다 각자 숨기거나 간직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따라가면 좋다.
감독의 이름을 알고 보는 관객에게는 배움의 과정도 남는다. 녹음을 맡으려고 책을 읽던 조수가 장비를 빌려 영화를 시작하고, 찍어온 장면을 편집자와 다루며 다시 배웠다. 초기작을 본다는 것은 훗날의 성공을 확인하는 일뿐 아니라, 처음에는 몰랐던 것을 어떤 작업으로 알아갔는지 보는 일이기도 하다.
◆ 루이즈가 알고 숨기는 것 — 남편의 죽음을 아는 관객과 모르는 가족의 차이에 주목하자. 관객이 진실을 알고 있어도 긴장은 이어진다. 어떤 말이 거짓인지보다 그 말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궁금해진다.
◆ 기억하려는 죽음과 감추려는 죽음 — 캐슬린을 추모하는 가족과 루이즈의 계획을 나란히 보자. 같은 죽음을 두고 감정과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호수가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인물마다 달리 읽힌다.
◆ 대사가 더하는 정보 — 성과 인물의 행동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사가 무엇을 보태는지 들어보자. 코폴라가 나중에 자기 글을 아쉬워했다는 사실은 참고가 된다. 그 평가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실제 장면에서 말의 역할을 살필 수 있다.
◆ 얼굴 앞의 사물 — 철제 장식이나 조각상처럼 사람과 함께 보이는 물건에 눈을 돌려보자. 인물이 어느 틈에 놓이고 무엇이 시선을 가리는지 볼 수 있다. 공간의 물건이 얼굴을 바라보는 방식에 참여한다.
◆ 더 테러 (1963) — 신비한 여자를 따라간 군인이 성에 도착한다. 코먼이 감독했고 코폴라도 크레딧에 표기되지 않은 연출 작업에 참여했다. 데멘시아 13과 함께 이중상영된 이력이 있어, 당시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묶어 만나던 경험도 생각해볼 수 있다.
◆ 공포의 작은 가게 (1960) — 꽃가게의 점원이 피를 먹는 식물을 키우면서 곤경에 빠진다. 코먼이 짧은 실내 촬영과 별도의 외부 촬영으로 만든 호러 코미디다. 제한된 장소에 이상한 존재를 들여놓는 방식이 성을 무대로 한 공포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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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