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즈 야킨의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할 때 얼굴과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두 아들에게 자기가 자란 예루살렘을 들려주며,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와 자세를 직접 …
보아즈 야킨의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할 때 얼굴과 몸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두 아들에게 자기가 자란 예루살렘을 들려주며,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와 자세를 직접 흉내 냈다. 마임 배우이자 신체 연기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어린 야킨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과장된 것 같다고 느꼈다. 훗날 가족을 만나러 그 도시에 갔을 때, 아버지가 몸으로 들려주던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회고했다.
그런 집에서 자란 야킨이 영화 일을 시작한 방법은 각본을 쓰는 것이었다. 종이에 쓴 이야기가 곧 자기 영화가 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 고쳐 쓰는 대본도 있었고, 직접 연출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아비바〉를 만들 때 그는 다시 대본을 다른 사람에게 건넸다. 이번에는 바비 진 스미스와 무용수들이 글만으로는 정해둘 수 없던 움직임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렸다.
야킨은 대학에 다닐 때 감독이 되는 방법을 물었다. 자기 각본을 쓰며 출발한 감독이 많다는 말을 듣고 시나리오를 썼고, 그것을 팔면서 젊은 나이에 직업 작가가 됐다. 하지만 팔린 첫 대본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글을 써서 돈을 받는 일, 그 글이 제작되는 일, 자신이 연출하는 일 사이에는 각각 거리가 있었다.
그 간격에 지친 그는 한때 영화 일을 그만둘 생각으로 파리로 떠났다. 돌아온 뒤 제작자 로런스 벤더가 낮은 예산으로 만들 수 있는 각본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직접 쓰고 연출한 첫 장편이 〈프레쉬〉였다. 감독이 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에게, 자기 이야기를 함께 만들겠다는 제작자를 만나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야킨에게 각본의 크레딧과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애착은 늘 같은 뜻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사람이 고쳐 쓰는 작업의 일부로 참여하는 경우와 직접 만들려는 이야기를 구분했다.
〈리멤버 타이탄〉처럼 많은 관객을 만난 영화도 야킨의 경력에 있다. 그런 작업에서 번 돈의 일부는 나중에 개인적인 영화의 제작비가 됐다. 〈아비바〉 역시 그가 직접 비용을 댄 작품이다. 다른 사람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 때 느끼는 흥행에 대한 책임과, 자기 돈으로 만드는 영화에서 감수할 수 있는 선택이 다르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선택 가운데 하나가 연인 두 명을 네 명의 배우에게 맡기는 일이었다. 〈아비바〉의 아비바와 이든은 각각 남녀 배우가 나눠 연기한다. 연애 중 상대와 다투는 마음 안에 자기 자신과의 갈등도 있다는 생각을, 야킨은 한 사람의 몸속에서만 처리하지 않았다. 마음의 다른 부분이 별도의 몸을 얻어 같은 화면에 들어온다.
이를 남자는 어떤 감정, 여자는 어떤 감정을 맡는 식으로 고정해버리면 영화에서 몸이 바뀌는 묘미가 줄어든다. 이미 아는 인물인데 다른 배우의 몸으로 만나면 관계의 인상도 새로 살피게 된다. 상대에게 다가가는 일이 망설임과 함께 있을 수 있고, 가까이 있는 동안에도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한 사람이 모순된 말을 하는 대신 서로 다른 몸이 그 곤란함을 나눠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야킨에게 이런 표현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공개된 영화 목록에 잡히지 않는 글과 다른 작업에서도 오랫동안 실험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아비바〉에서는 그 관심에 춤이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했다. 연극과 마임이 익숙했던 배경, 한 인물을 두 배우에게 맡기는 구상, 무용수들과의 작업이 한 영화 안에서 만났다.
야킨은 각본에 춤이 들어갈 위치와 그 장면이 전할 감정, 함께 들릴 목소리를 써두었다. 실제로 어떤 움직임이 될지는 스미스와 무용수들의 일이었다. 감독이 모든 동작을 정해 전달하고 그대로 재현하게 한 작업은 아니었다. 안무를 맡고 이든도 연기한 스미스는 이야기와 춤 사이의 연결을 계속 살폈다. 움직임을 더 만드는 것만큼 지금 왜 움직여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준비 과정에서 역할이 달라지자 촬영 방식에도 그 영향이 이어졌다. 야킨과 스미스는 춤이 별도로 준비된 공연처럼 끼어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카메라도 정면에 앉아 동작을 구경하기보다 인물들의 움직임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춤을 추기 전의 감정과 춤추는 동안의 감정 사이에 뚝 끊어진 선이 생기지 않게 하려는 선택이었다.
스미스가 이든을 연기하며 길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그 협업이 특히 구체적이다. 야킨은 장면을 끊지 않고 찍겠다고 정해두었지만, 현장에 오기 전까지 완성된 움직임을 다 알지는 못했다. 스미스가 준비한 틀을 보여주자 카메라 자리를 잡았고, 몇 차례 촬영해 장면을 얻었다. 장소를 옮겼다는 정보를 짧게 처리하는 대신, 움직임을 따라가는 시간이 영화 안에 들어왔다.
이 장면을 준비하며 스미스는 야킨의 아버지와도 짧게 작업했다. 아버지의 마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두 아들에게 몸짓 섞인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이, 아들의 영화에서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돕는 동료로 참여했다.
야킨의 경력은 다음에 어떤 영화를 만들 사람인지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그때마다 장르를 바꾸는 취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돈으로 만들고, 어느 부분을 직접 정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맡기는지가 달라진다. 〈아비바〉는 감독이 자기 표현의 여지를 넓히면서도 실제 장면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창작자의 몫을 크게 남긴 영화다.
배역의 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두 연인의 만남과 갈등은 낯설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말로 해명하면 길어질 마음이 몸 사이의 거리로 나타난다. 같은 사람을 맡은 배우들이 다른 상대를 만날 때, 어떤 조합이 유난히 편안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는지도 볼 만하다. 줄거리의 다음 사건을 기다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금 눈앞의 관계를 지켜보게 된다.
◆ 배우가 바뀐 뒤의 관계 — 〈아비바〉에서는 인물이 그대로인데 연기하는 몸이 달라진다. 그 순간 상대와의 관계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살펴보자. 어느 배우가 진짜 인물인지 판별하는 수수께끼로만 보면 이미 설명된 설정에 묶이기 쉽다. 같은 마음이 서로 다른 몸을 통해 표현될 때 새로 눈에 들어오는 거리와 태도가 감상의 단서다.
◆ 움직이기 직전에 오간 것 — 춤이 시작되기 전 인물들이 무엇을 말하고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기억해두자. 스미스는 동작 자체뿐 아니라 인물이 왜 움직이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춤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따로 떼어 감상한 뒤, 앞의 대화와 다시 이어보면 말이 끝난 자리에서 어떤 감정이 계속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 카메라가 함께 움직일 때 — 무용수를 멀리서 한눈에 볼 때와 카메라가 가까이 들어갈 때는 보이는 것이 다르다. 전체 동작의 모양에 눈이 갈 수도 있고 작은 망설임이나 상대와의 접촉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비바〉에서 시선의 거리가 바뀌는 순간을 따라가면 안무를 감상하는 일과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경험이 어떻게 겹치는지 볼 수 있다.
◆ 동작을 끊지 않고 보는 시간 — 스미스가 이든의 여정을 마임과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움직임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자. 어디로 갔다는 정보만 받는 장면과 달리, 몸이 그 과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해진다. 컷이 대신 정리해주지 않는 동안 관객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생각하면 야킨이 길게 촬영하기로 한 선택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 〈아비바〉 — 야킨의 구상과 스미스의 안무, 무용수들의 연기가 긴밀하게 만나는 작품. 두 사람을 네 배우가 나누는 설정을 알고 나면 감정의 변화가 몸과 동작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보기 좋다. 감독의 각본에서 출발해 다른 창작자들이 완성한 장면들에 주목할 만하다.
◆ 〈리멤버 타이탄〉 — 야킨이 연출하고 덴젤 워싱턴이 출연한 풋볼 드라마. 서로 다른 배경의 선수들이 한 팀을 이뤄가는 이야기다. 〈아비바〉와 같은 메시지나 형식을 찾으려 하기보다, 같은 감독이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얼마나 다르게 택할 수 있는지 비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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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