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방에 들어온 남자가 가구를 흰 천으로 덮는다. 잠깐 묵고 갈 곳인데 손이 많이 간다. 의자와 책상이 하나씩 가려지고 나면, 이 방만큼은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듯하다. 〈카드…
호텔 방에 들어온 남자가 가구를 흰 천으로 덮는다. 잠깐 묵고 갈 곳인데 손이 많이 간다. 의자와 책상이 하나씩 가려지고 나면, 이 방만큼은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듯하다. 〈카드 카운터〉의 윌리엄 텔이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방법이다. 그를 연기하는 오스카 아이삭의 손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의 궁금증도 바뀐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견디고 있을까.
폴 슈레이더는 이런 수고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 혼자 지내는 남자가 자주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롭다는 말만으로는 그 남자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무엇을 쓰고, 잠들기 전에 무엇을 정리하는지 알아야 한다. 자신을 다스리는 데 익숙해 보이는 사람이 정작 어떤 순간에 무너지는지, 슈레이더는 그 순서를 오래 들여다봐 왔다.
그에게 영화의 출발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혼자 방에 있는 남자였다. 비평을 쓰던 시절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를 보고, 일기를 쓰고 집을 나서는 인물만으로도 자신이 만들 영화가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엄격한 종교적 환경에서 자란 그는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종교적 경험과 통하는 것을 발견했다. 믿음에 관한 대사를 쓰지 않고도, 한 사람을 지켜보는 방식으로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그가 각본을 쓰고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택시 드라이버〉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제목이 됐다. 차 안에 홀로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태워야 하는 일이다.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인지,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없어서 혼자인지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택시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도 운전자를 작은 칸 안에 가둔다. 직업 하나가 인물의 생활과 화면 속 자리를 함께 정한다.
슈레이더는 자기 고민을 바로 자기와 닮은 인물에게 맡기기보다, 그 고민을 담을 다른 직업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후기 작품의 도박사와 정원사를 보고 감독 본인의 분신이라고만 말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 카드와 식물은 같은 속도로 다뤄지지 않는다. 도박사는 거듭 판에 앉고, 정원사는 오늘 손본 곳이 자라는 시간을 기다린다. 비슷한 고독도 그 사람이 하루를 보내는 방식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
〈카드 카운터〉에서 텔은 군 심문관으로 일했던 과거를 안고 카지노를 떠돈다. 도박을 한다고 해서 매 순간 흥분을 좇는 인물은 아니다. 영화가 그에게 되풀이할 일을 준다는 점이 더 눈에 들어온다. 카드 앞에 앉았다가 방으로 돌아오는 생활에는 정해진 순서가 있다. 반복이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 남자에게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를 넘기는 방법처럼 보인다.
가구를 덮는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는 방 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편집은 천을 다루는 손을 가까이 보여준다. 큰 동작이 없는 장면인데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또렷하다. 흰 천은 물건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 위에 같은 색을 씌울 뿐이다. 텔이 이 방을 얼마나 정돈할 수 있는지 볼수록, 정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따로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과거를 보여주는 화면에서는 이 안정감이 사라진다. 아부그라이브의 기억은 공간이 휘어 보이는 영상으로 나타난다. 정돈된 방을 보던 관객은 이 기억 속에서는 공간의 모양조차 편안하게 가늠할 수 없다. 슈레이더와 촬영감독은 현재와 과거를 단지 색이나 의상으로 구별하지 않았다. 관객이 화면 안에서 거리를 가늠하는 감각부터 달라지게 했다.
이 절제된 화면을 슈레이더 영화의 고정된 공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같은 촬영감독과 만든 〈퍼스트 리폼드〉에서는 사각형에 가까운 화면과 제한된 카메라 움직임을 택했지만, 〈카드 카운터〉의 카지노에서는 카메라가 더 움직인다. 사람과 기계가 가득한 곳에서도 텔은 홀로 보일 수 있다. 그를 외롭게 만들기 위해 주변을 모두 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차이가 알려준다.
〈마스터 가드너〉의 정원사 나블 로스는 부유한 저택의 정원을 관리한다. 고용주 노마가 종손녀 마야에게 일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의 생활에 변화가 생긴다. 나블은 식물을 잘 알고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백인우월주의에 가담했던 과거가 있다. 지금의 숙련된 정원사와 과거의 가해자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관객 앞에 놓는다.
이때 정원 일의 구체성이 중요해진다. 나블을 막연히 회개한 사람으로 소개했다면 달라졌다는 말부터 믿거나 의심해야 했을 것이다. 영화는 먼저 그가 할 줄 아는 일을 보여준다. 무언가를 오래 돌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식물을 잘 키우는 능력이 그가 저지른 일을 씻어주지는 않는다. 나블을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은 어느 한쪽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둘 다 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블 역을 맡은 배우는 조엘 에저튼이다. 슈레이더는 정원사 역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릴 만한 인상과 다른, 덩치가 있는 배우를 원했다고 밝혔다. 배우를 고를 때부터 이 직업에 대한 익숙한 이미지를 따르지 않은 셈이다.
슈레이더는 이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날 법한 사례를 재현하는 영화보다, 이런 사람에게 변화의 가능성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가정에 가깝게 설명했다. 그 출발에 동의해야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블에게 기회를 주는 이야기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불편함을 피하려고 그를 처음부터 악인으로만 그렸다면, 지금의 행동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고민할 자리도 줄었을 것이다.
이런 선택을 지키는 데에는 제작 방식도 한몫한다. 슈레이더는 〈퍼스트 리폼드〉와 〈카드 카운터〉를 각각 20일 동안 촬영했다고 밝혔다. 촬영할 것을 미리 좁히고 비용을 절제해 최종 편집권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계획을 좁혀야 하지만, 완성할 영화를 남에게 맡기지 않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적은 제작비가 이 감독에게는 자기 결정을 지키는 조건이 된 셈이다.
〈마스터 가드너〉를 보고 나블의 변화가 충분히 설득되지 않았더라도, 그 의문을 서둘러 지울 필요는 없다. 슈레이더의 영화를 함께 보면 그가 왜 이런 인물을 놓지 않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다. 하루를 새로 꾸리는 일과 과거에 책임지는 일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격이 있을까. 정원에서 일하는 모습이 성실할수록 그 간격이 더 거슬릴 수도 있다.
그의 영화에는 누가 봐도 극적인 사건이 아닌데 눈을 떼기 어려운 시간이 있다. 방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일터를 오가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따라가면 인물이 내세우는 말에만 기대지 않고 그를 볼 수 있다. 조용한 사람에게 비밀이 있다는 익숙한 장치를 넘어, 조용하게 살기 위해 그 사람이 매일 얼마나 애를 쓰는지까지 보게 하는 감독이다.
◆ 일을 잘한다는 인상 — 〈마스터 가드너〉에서 나블의 숙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지켜보자. 정원을 관리하는 능력 때문에 그를 신뢰하게 됐다면, 과거를 알게 된 뒤 그 신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중요하다. 영화가 인물을 좋게 설명하는 대사와, 관객이 일하는 모습만 보고 좋게 판단하는 순간은 서로 다를 수 있다.
◆ 손이 하는 일 — 〈카드 카운터〉에서 가구를 덮는 과정은 줄거리의 다음 사건으로 서둘러 넘어가지 않는다. 천을 펴고 물건을 가리는 손을 보여주는 동안 이 남자의 습관을 알아가게 된다. 무엇을 했다는 결과보다 그 일을 거듭하는 데 드는 수고를 본다면, 반복되는 장면도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 같은 감독, 다른 방 — 〈퍼스트 리폼드〉와 〈카드 카운터〉의 화면은 모두 절제돼 있지만 폭과 움직임이 같지는 않다. 인물 혼자 있는 방과 사람이 많은 일터에서 카메라가 얼마나 따라가는지 비교해보자. 멈춰 있는 화면만이 고립을 만드는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며 볼 수 있다.
◆ 달라졌다는 말을 듣기 전에 — 나블에게 새 삶을 허락하는 이야기를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떤 행동은 믿어졌고 어떤 대목은 끝내 믿기 어려웠는지 구체적인 순간을 짚어보자. 영화가 달리 보여줬다면 판단이 바뀌었을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의 변화를 인정하는 기준을 영화 속 구체적인 순간과 함께 따져볼 수 있다.
◆ 〈카드 카운터〉 — 폴 슈레이더가 쓰고 연출했다. 혼자 방을 정돈하는 남자가 과거를 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스터 가드너〉와 이어진다. 두 인물의 죄를 같다고 놓기보다, 도박과 정원 일이 각자에게 어떤 하루를 만들어 주는지 비교하면 좋다.
◆ 〈택시 드라이버〉 — 폴 슈레이더의 각본을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했다. 이후 슈레이더가 직접 만든 영화들과 연결해 볼 수 있는 출발점이다. 혼자 생각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곧 그 남자의 판단을 믿는 일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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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