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관통하는 기도, 한국 드라마가 담은 믿음의 풍경 | MovieLAB LAB

취업 준비에 지친 20대 중반의 두 친구, 설희(여설희)와 화정(우화정)이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서울에서 동해로.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겠다는 소박한 계획. 그러나 이 계획…

한반도를 관통하는 기도, 한국 드라마가 담은 믿음의 풍경 | MovieLAB LAB

취업 준비에 지친 20대 중반의 두 친구, 설희(여설희)와 화정(우화정)이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서울에서 동해로.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겠다는 소박한 계획. 그러나 이 계획은 곧바로 어긋난다. 일출을 놓치고, 여행지에서 다투고, 각자 따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이 어긋남에서 시작되는 우연한 만남들의 이야기다. 설희는 공황장애를 겪는 지안(서지안)을 만나고, 화정은 잃어버린 앵무새를 찾는 소녀를 만난다. 이 우연한 만남들이 두 친구에게 묻어두었던 내면을 마주할 계기를 만든다. 이광국 감독의 이 작품은 로드무비의 형식 안에서 한국 청년 세대의 불안과 희망, 우정과 성장을 담는다.

배우의 이름과 배역의 이름이 같다는 점은 이 영화를 읽는 첫 단서다. 여설희가 설희를 연기하고 우화정이 화정을 연기하며, 설희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물은 서지안이 연기하는 지안이다. 이런 명명은 배우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좁히고, 관객이 배역을 허구 쪽으로만 밀어두기 어렵게 만든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의 주인이 화면 안에 함께 있는 셈이다.

어긋난 계획, 여행의 진짜 시작

계획대로 되는 여행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출을 보겠다는 계획이 실패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계획의 실패가 서사의 시작이다. 이 구조는 인생의 패턴과 닮아 있다. 계획이 어긋날 때 비로소 예상치 못한 경험이 시작되고, 그 경험이 성장의 계기가 된다.

두 친구가 다투는 것도 계획되지 않은 사건이다. 설희와 화정은 오랜 친구이지만, 여행의 스트레스가 평소에 묻어둔 갈등을 표면으로 끌어올린다. 각자가 처한 상황의 차이, 즉 취업의 압박과 미래의 불안, 서로를 향한 기대의 온도 차가 다툼으로 폭발한다. 이 다툼이 각자를 흩어지게 만들고, 흩어짐이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 청년 영화에서 '계획의 실패'는 반복되는 모티프다. 취업, 연애, 인생 설계. 20대를 지배하는 이 계획들이 하나씩 어긋나며, 그 어긋남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구조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 이 패턴을 따르면서도 독특한 것은, 여행이라는 물리적 이동으로 내면의 이동을 촉발한다는 점이다.

우연한 만남들 — 다른 사람, 같은 불안

단청을 칠한 한옥 정자 앞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종이봉투에서 꺼낸 간식을 먹는 두 사람. 오른쪽 인물 옆에 연두색 플라스틱 반려동물 이동장이 놓여 있다.

설희가 만나는 지안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뛰며,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 설희는 자신에게도 비슷한 불안이 있음을 지안에게서 발견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자기 고통의 거울이 되는 것. 이 발견이 설희에게 위기이면서 동시에 해방이다.

화정의 경험은 다르다. 잃어버린 앵무새를 찾는 소녀와의 만남은 더 가볍고, 더 기이하다. 앵무새를 찾아 동해의 골목을 헤매는 이 에피소드는 코믹하면서도 은유적이다. 화정 자신도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그것을 찾고 있으며, 아직 찾지 못했다.

이광국 감독은 이 두 만남을 교차 편집하면서, 설희와 화정이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친구가 다시 합류했을 때, 무언가가 달라져 있다. 서로를 이해하는 깊이가.

크레딧에서 이광국의 이름은 다섯 번 나온다. 연출과 각본은 물론이고 촬영과 편집, 그리고 제작까지 그가 맡았다. 카메라를 직접 든 사람이 편집대에도 앉았다는 것은 찍는 순간에 이미 자를 자리를 염두에 두었다는 뜻이다. 설희 쪽과 화정 쪽을 어디서 번갈아 놓을지가 연출과 분리된 결정이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해라는 공간 — 서울을 떠나야 보이는 것

인적 없는 백사장에서 한 사람은 서 있고 한 사람은 쪼그려 앉은 채 바다를 바라보는 두 친구.

영화의 배경이 동해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울을 떠나야 서울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바다의 광활함이 서울의 좁은 방과 대비되며, 자연의 리듬이 도시의 속도와 대비된다. 동해의 바닷바람, 해안도로의 풍경, 작은 마을의 분위기. 이 공간적 전환이 두 친구의 내면 전환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한국 로드무비에서 바다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목적지다. 바다로 간다(2016), 윤희에게(2019) 등에서 바다는 일상 탈출과 자기 발견의 장소로 기능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도 이 전통 위에 있지만, 바다 도달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바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핵심이어서 차별화된다.

즉흥적인 여행을 다룬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찍힌 영화는 아니다. 다만 감독이 촬영까지 겸했다는 조건은 현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인원이 적은 팀은 해안도로와 작은 마을의 골목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공간에 더 쉽게 들어간다. 서울을 떠나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이 영화의 명제는 화면 안에서만이 아니라 제작 방식에서도 지탱된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한국 청년의 불안은 보편적이면서 특수하다. 취업 준비, 스펙 경쟁, 미래의 불확실성. 이 압력이 20대의 일상을 지배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은 이 압력에서 잠시 벗어나는 여행에서, 압력 아래 묻혀 있던 감정들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직면이다.

이광국 감독의 이 작품은 한국 독립영화의 섬세한 인물 묘사와 자연스러운 대화 연출이 돋보인다. 대형 서사 대신 작은 만남들의 축적으로 서사를 구성하는 미니멀한 접근이, 관객에게 여행의 우연성을 체험하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대화라는 인상도 크레딧과 무관하지 않다. 각본을 쓴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편집까지 했다면, 대사가 문서에서 화면으로 옮겨지는 동안 거쳐야 할 손이 하나뿐이다. 쓸 때의 호흡과 찍을 때의 호흡과 자를 때의 호흡이 어긋날 이유가 그만큼 줄어든다.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배역들이 그 호흡 위에 놓인다.

음악은 정용진이 맡았다. 연출과 촬영과 편집을 한 사람이 쥔 영화에서 바깥에 맡긴 몇 안 되는 자리 가운데 하나다. 어떤 영화가 무엇을 바깥에 맡기는지를 보면 그 영화가 무엇을 자기 손에 두려 했는지도 보인다. 이 영화는 화면과 리듬을 안으로 거둬들이고 소리를 밖에서 들였다.

제작사는 영화사 벽돌이고, 이광국과 함께 이기남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러닝타임은 101분, 개봉일은 2025년 11월 26일이다.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 이 길이 안에 여행과 다툼과 두 갈래의 만남이 모두 들어간다. 사건의 가짓수를 늘리는 대신 만남 하나하나의 밀도를 택했다는 뜻이다.

바닷가 철제 난간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인 여성. 뒤로 에메랄드빛 바다와 자갈 해변이 펼쳐져 있다.

감상 포인트

계획의 실패 — 일출을 놓치는 순간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됨을 인식하라.

타인이라는 거울 — 설희와 화정이 만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어떤 면을 비추는지 관찰하라.

다툼의 의미 — 두 친구의 갈등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화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추적하라.

공간의 전환 — 서울에서 동해로의 이동이 내면의 어떤 변화와 연결되는지를 느껴보라.

관련 작품

정말 먼 곳 (2021) — 한국 독립영화의 조용한 인물 중심 화법. 도시를 떠나 자연 공간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톤과 방법론이 직접 연결된다.

십개월의 미래 (2021) — 동시대 한국 청년(20대 여성)의 불안과 삶의 불확실성을 미니멀하게 담은 한국 인디. 설희·화정이 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주제적으로 공명한다.

린다 린다 린다 (2005) — 젊은 여성들의 우정과 청춘의 결을 잔잔히 그린 작품. 두 친구의 관계축과 담담한 톤에서 접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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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