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는 택시에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탔다. 게다가 빨리 가달라고 한다. 야구광에게 이보다 신나는 손님이 있을까. 스피디의 해롤드는 베이브 루스를 태우고 양키 스타디움으로…
내가 모는 택시에 가장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탔다. 게다가 빨리 가달라고 한다. 야구광에게 이보다 신나는 손님이 있을까. 스피디의 해롤드는 베이브 루스를 태우고 양키 스타디움으로 달린다. 손님을 제때 데려다주려는 열성은 대단한데, 뒷좌석의 루스는 무서워진다. 운전사의 감격이 승객에게도 즐거운 것은 아니다.
해롤드 로이드가 연기하는 이 청년은 일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한다. 야구 소식에 정신이 팔려 해고된 뒤에도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테드 와일드가 연출한 영화는 그런 해롤드를 택시와 놀이기구, 말이 끄는 전차에 태운다. 탈것이 바뀔 때마다 그가 움직여야 할 이유도 달라진다.
해롤드에게 야구는 근무가 끝나고 즐기는 취미로만 남지 않는다. 가게 심부름 중에도 경기 점수가 궁금하고, 택시 손님으로 만난 스타가 경기장에 초대하면 따라가고 싶어진다. 돈을 벌려는 계획은 있는데, 눈앞에 더 신나는 일이 생기면 계획이 뒤로 밀린다.
루스가 직접 자신을 연기한다는 사실은 이 장면의 재미를 더한다. 야구장에서 엄청난 존재인 사람이 해롤드의 택시에서는 불안한 승객이 된다. 운전대를 잡은 팬에게 오히려 자기 몸을 맡겨야 한다. 유명인을 만나 쩔쩔매는 순간과 그 유명인을 난처하게 만드는 순간이 한 차 안에서 이어진다.
해롤드는 택시를 빨리 몰 수 있다. 사람들과 차가 많은 거리에서는 운전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일이 생긴다. 주차 단속을 피하고 고용주가 바라는 대로 일하는 문제 앞에서 그의 능숙함은 자꾸 엉뚱한 쪽으로 샌다. 일을 못해서만 곤란해지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재미있다.
연인 제인은 앤 크리스티가 연기한다. 두 사람이 코니아일랜드로 놀러 가는 동안 영화의 속도가 달라진다. 지하철에서는 자리를 얻으려고 꾀를 쓰고, 놀이공원에서는 기구에 몸을 맡긴다. 거리에서 빨리 움직이려면 길을 잘 찾아야 하지만, 놀이기구는 사람을 자꾸 원래 자리에서 밀어낸다.
두 사람이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데이트가 말끔히 차려입고 나란히 걷는 일로만 남지 않는다. 함께 흔들리고 부딪히면서 서로를 본다. 거리에서는 일을 놓쳐 곤란해지던 청년이 여기에서는 놀다가 생긴 소동을 연인과 함께 겪는다. 해롤드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성격을 고칠 필요가 없는 시간이다.
데이트를 마친 두 사람은 친구가 모는 이삿짐 차를 타고 돌아온다. 가구를 실은 차 안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날을 꿈꾼다. 사람을 실어 나르는 차에 두 사람이 바라는 집의 모습이 잠깐 겹쳐진다. 영화 속 교통수단이 늘 위험한 질주에만 쓰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정한 장면이다.
제인의 할아버지 팝 딜런은 말이 끄는 노면전차를 운영한다. 버트 우드러프가 맡은 이 노인은 노선을 사들이려는 사업가와 맞선다. 영화에서 뉴욕의 마지막 말전차로 설정된 이 노선에는 조건이 있다. 스물네 시간에 한 번은 운행해야 한다. 해롤드가 맡게 되는 일은 남보다 빠르게 달리는 것뿐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이 오래된 교통수단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야구 경기 때문에 제 일을 놓치던 청년에게 이제 지켜야 할 다른 사람의 시간이 생긴다. 팝에게 전차는 생업이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저녁에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전차를 빼앗긴다는 것은 한 노인이 일자리를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해롤드가 돕겠다고 나설 때, 그와 제인이 오가는 동네의 생활도 함께 걸린다.
택시는 승객을 목적지에 내려주면 떠날 수 있지만, 팝의 전차는 같은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영화가 두 탈것에 맡긴 일이 다르다. 어디든 달려갈 것 같은 해롤드가 일정한 노선을 지켜내려 한다는 점에서 후반의 분주함은 앞선 소동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재주에 쓸 곳이 생긴 셈이다.
스피디에는 코니아일랜드와 양키 스타디움 등 실제 뉴욕에서 찍은 장면이 들어 있다. 촬영은 1927년에 진행됐고 영화는 이듬해 개봉했다. 일부 외경은 로스앤젤레스의 로이드 촬영장에서 만들었다. 영화 속 뉴욕은 현장에서 얻은 풍경과 준비한 공간을 이어 완성한 도시다.
당시 촬영을 도운 스태프는 거리에서 벌어진 소동을 전했다. 한 여성이 교통경찰 역 배우에게 길을 물었는데, 배우가 답하지 못하자 화를 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바람에 촬영을 미뤄야 했다. 제작진은 로이드와 카메라를 숨겨 촬영하기도 했지만, 도시가 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았다.
실제 거리와 영화가 만든 거리가 만나는 방식도 흥미롭다. 브루클린의 한 구간에서 전차가 마주 오는 자동차 사이를 통과하는 동작은 서로 반대쪽에서 촬영돼 영화의 다른 두 장면으로 쓰였다. 같은 길이라도 카메라가 보는 방향을 바꾸면 새 장애물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도시는 촬영할 풍경을 내주고, 영화는 그 풍경으로 해롤드가 달릴 길을 다시 만든다.
스피디에서 해롤드는 일을 구하고, 야구를 보고, 연인과 놀러 가고, 이웃의 생업을 돕는다. 그 생활이 택시와 전차, 놀이공원의 움직임을 따라 이어진다. 같은 청년이 달려도 누구와 함께 있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에 따라 웃음의 이유가 달라진다. 오래된 뉴욕의 거리와 탈것을 보는 즐거움이 이 부산한 청년을 따라가는 재미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뒷좌석에 앉은 스타
루스가 해롤드의 택시에 탄 뒤 운전사와 승객의 반응을 함께 보자. 좋아하는 선수를 만난 팬의 열성이 상대에게는 어떤 경험이 되는지 드러난다. 야구장에서의 명성과 도로 위에서의 처지가 뒤바뀌는 장면이다.
데이트 중에 몸이 흔들릴 때
제인과 해롤드가 놀이기구 안에서 균형을 잡으려 하는 모습을 보자. 거창한 사랑의 표현 없이도 함께 난처해지는 시간이 두 사람을 가까이 보게 한다. 돌아오는 이삿짐 차의 장면까지 이어보면 놀이와 결혼에 대한 꿈 사이의 변화도 느낄 수 있다.
전차가 다녀야 하는 이유
팝의 전차를 타거나 그 안에 모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보자. 노선을 운영하는 규칙 뒤에는 그 전차와 함께 살아가는 동네가 있다. 해롤드의 분주함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면서 처음의 일자리 소동과도 차이가 난다.
길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전차 앞에 차나 건물이 나타날 때 화면이 그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보자. 길을 건너거나 모퉁이를 도는 동작이 이어지며 다음에 통과해야 할 공간이 생긴다. 실제 뉴욕의 지도를 외우기보다, 장면마다 무엇이 길을 막고 무엇이 빠져나갈 틈이 되는지 따라가면 좋다.
세이프티 라스트! (1923)
백화점에서 일하는 청년이 홍보 행사를 계기로 건물 외벽을 오르게 된다. 거리에서 길을 찾는 스피디와 달리, 이번에는 발을 둘 곳과 붙잡을 곳을 위쪽으로 찾아야 한다. 로이드의 몸과 도시의 구조가 만나는 또 다른 코미디다.
제너럴 (1926)
기관사가 빼앗긴 기관차를 되찾으러 나선다.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크기와 움직임이 추격의 조건이 된다. 스피디의 말전차와 나란히 보면 탈것의 성질에 맞춰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해야 하는지 달라지는 재미가 있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 (1929)
도시의 노동과 일상을 촬영한 장면들을 빠른 편집과 다양한 시점으로 잇는다. 특정 주인공의 소동을 따라가는 스피디에서 한 걸음 옮겨, 사람과 기계의 움직임 자체가 영화의 흐름을 만드는 방식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