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르크는 자기 영화를 빼앗길 수 없다며 작업물을 들고 달아난다. 제작자들의 간섭을 피해 도착한 곳은 드니즈 이모의 시골집. 편집자와 조수까지 함께 왔으니 이제 영화를 끝내면…
감독 마르크는 자기 영화를 빼앗길 수 없다며 작업물을 들고 달아난다. 제작자들의 간섭을 피해 도착한 곳은 드니즈 이모의 시골집. 편집자와 조수까지 함께 왔으니 이제 영화를 끝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마르크는 자신이 찍은 영화를 보려 하지 않는다.
공드리의 솔루션북에서 일을 막는 것은 아이디어 부족이 아니다. 마르크에게는 좋은 생각이 너무 자주 떠오른다. 하나를 마치기도 전에 다음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을 실행하는 도중에 또 다른 해결책을 내놓는다. 피에르 니네가 연기하는 이 감독과 같은 방에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해야 할 일을 오늘 끝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마르크는 한곳에 머물러 영화를 편집하는 대신 작업 환경부터 바꾼다. 트럭을 편집실로 고치는 일도 그중 하나다. 발상만 들으면 재미있다. 영화 작업에 필요한 공간을 손수 만드는 감독이라니, 완성품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편집자 샤를로트에게는 이미 손봐야 할 영화가 있다. 새로운 편집실을 만드는 동안에도 그 작업은 기다리고 있다.
마르크의 생각을 따라가는 재미와 그가 끝내야 할 일을 떠올리는 답답함이 나란히 생긴다. 우리는 새 발명품이 보고 싶다가도 샤를로트 쪽을 돌아보게 된다. 감독은 자기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순간에 몰두하지만, 편집자는 그 다음에도 남아 있을 일을 알고 있다. 같은 영화를 위해 모였어도 두 사람이 지금 하려는 일은 자꾸 달라진다.
마르크는 문제를 해결하는 요령을 책으로 엮으려 한다. 자기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하면서 다른 문제들에는 답을 쓸 수 있다고 믿는 셈이다. 그래서 ‘솔루션북’이라는 제목에는 제법 짓궂은 구석이 있다. 해결법을 적는 일도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된다. 책에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정작 편집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그 생각을 언제 영화에 적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마르크가 자기 영화를 피하는 이유를 하나로 정리할 필요는 없다. 실패가 두려워서일 수도, 촬영을 끝낸 결과물보다 새 일을 구상하는 쪽이 즐거워서일 수도 있다. 미셸 공드리 역시 마르크가 영화를 보지 못하는 까닭을 확정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인지, 그 영화만큼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인지 여러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에게도 멈춰 서서 이미 한 일을 확인하는 순간은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고 마르크의 발상을 전부 헛일이라고 치부하면 영화의 재미가 사라진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장면이 그렇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그는 팔과 다리, 몸의 움직임으로 연주자들에게 원하는 음악을 전하려 한다. 말로 설명할 때는 막막한 방법이 실제 소리로 이어진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던 시도가 어느 순간 공연이 된다.
이 장면에서 마르크만큼 눈여겨볼 사람은 샤를로트다. 늘 새 일에 휩쓸리는 편집자가 이번에는 그가 하는 일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공드리는 처음에 샤를로트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편집하러 돌아가고 싶어 하는 장면을 생각했다. 샤를로트를 연기한 블랑슈 가르댕이 그를 다정하게 지켜보자고 제안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이 작은 차이로 두 사람이 함께 일하는 사정이 조금 더 이해된다. 샤를로트에게 마르크는 그저 견뎌야 하는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일을 어렵게 만드는 바로 그 사람이 때로는 뜻밖의 결과를 낸다. 함께한 시간을 오로지 짜증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그렇다고 멋진 연주 한 번으로 그동안의 부담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마르크의 재능을 알아보는 것과 그의 요구를 매번 받아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마르크는 영화 밖의 일에도 손을 뻗친다. 임시 시장까지 맡는 그의 모습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욕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편집을 끝내기 위해 시골에 왔다는 처음의 목적을 기억하면, 그가 새 역할에 진지할수록 우습다. 자신에게는 중요한 새 임무겠지만 영화를 기다리는 동료에게는 감독을 다시 불러와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드니즈 이모의 집은 마르크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프랑수아즈 르브렁이 연기하는 이모는 조카를 반기지만, 그의 행동을 한없이 내버려두기만 하는 인물은 아니다. 따뜻하게 대하면서도 자기 원칙을 지키려 한다. 마르크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어른이면서, 그가 오래 곁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모와 편집자는 마르크의 삶에서 서로 다른 자리에 있다. 이모에게는 조카가 찾아온 시간이고, 샤를로트에게는 함께 영화를 끝내야 하는 시간이다. 마르크가 시골에 머무는 일이 누구에게는 반가움이 되고 누구에게는 끝나지 않는 작업이 된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인내하는 인물로 묶기 어려운 이유다.
공드리는 무드 인디고를 만들던 시기의 경험을 이 이야기에 가져왔다. 실제 이모의 집에서 촬영했고, 자신을 닮은 마르크를 다른 배우에게 맡겼다. 여기서 자화상의 재미는 영화감독이 속마음을 얼마나 솔직하게 털어놓는지에만 있지 않다. 자기가 즐겁게 무언가를 만들던 시간에 다른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러니 마르크를 특별한 창작자라고 치켜세우는 것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발상이 빛나는 순간에는 그 생각에 응답하는 사람이 있다. 연주자들이 몸짓을 음악으로 받아주고, 편집자는 흩어진 작업을 이어간다. 공드리의 영화를 좋아해 온 관객이라면 마르크의 새 아이디어뿐 아니라, 그 아이디어가 다른 사람에게 건너가는 순간에도 마음이 갈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경험이 늘 재미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 차이를 마르크와 동료들 사이에 놓는다. 감독의 엉뚱한 발상에 웃다가 편집자를 걱정하고, 이제는 그만했으면 싶다가도 뜻밖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마르크에게 등을 돌리기에도, 무조건 편들기에도 마음이 조금 복잡해지는 코미디다.
영화 제작 과정을 잘 몰라도 이 관계는 어렵지 않다. 일을 끝내려고 모였는데 누군가 새로운 방법을 들고 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이 얼마나 기발한지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어떤 일을 남기는지다. 마르크를 향한 샤를로트의 표정에는 그 일을 오래 해본 사람의 사정이 있다.
아이디어 다음에 남는 일
마르크가 새 해결책을 꺼낼 때 그 일을 누가 실행하게 되는지도 함께 보자. 트럭을 편집실로 바꾸는 발상은 재미있지만, 샤를로트에게는 끝내야 할 편집이 남아 있다. 같은 제안이 두 사람에게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된다.
지휘하는 몸과 지켜보는 얼굴
오케스트라 장면에서는 마르크의 큰 몸짓 곁에 샤를로트의 반응을 놓고 볼 만하다. 그가 만드는 음악을 편집자도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의 관계를 넓힌다. 짜증과 애정 중 어느 한쪽만 진심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영화를 보지 않으려는 감독
자기 작품을 지키려고 도망친 마르크가 정작 결과물을 마주하기는 피한다. 자신감 넘치는 행동과 이 망설임을 함께 따라가면 그를 단순히 자기 확신에 찬 사람으로만 보기 어렵다. 그가 다른 일로 향하는 순간에도 미완성인 영화는 남아 있다.
드니즈의 따뜻함과 원칙
이모가 조카를 반기는 모습과 그의 행동을 다잡으려는 모습을 함께 살펴보자. 이모의 집은 작업 장소인 동시에 두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집이다. 같은 체류를 편집자와 이모가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
두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토 (2024, 프레데리크 포티에·발랑탱 포티에)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쌍둥이 자매가 손에 생긴 질환으로 연주를 계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창작을 무조건 고집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묶기보다, 해오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무엇을 바꾸고 누구와 함께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갔다면 이어볼 만하다.
유스 (2015, 파올로 소렌티노)
은퇴한 작곡가와 아직 새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는 감독이 휴양지에 머문다. 두 사람의 예술 활동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작업을 이어가려는 마음과 멈추려는 마음이 같은 장소에서 어떻게 엇갈리는지 공드리의 시골집과 견줘볼 수 있다.
이터널 선샤인 (2004, 미셸 공드리)
이별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 연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한 남자가 그 과정에서 마음을 바꾼다. 간단해 보이는 해결책으로는 정리되지 않는 관계를 다룬다. 공드리가 어떤 기발한 장치를 만들었는지와 함께, 그 장치를 쓰는 사람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보게 하는 영화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