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의 집에서 범인을 찾는 일 | MovieLAB LAB

옛 연인이 찾아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해달라고 한다. 의뢰를 받아들이면 그 여자도 의심해야 한다. 비뚤어진 집의 사립탐정 찰스 헤이워드가 맡은 일이다. 할아버지는 큰 부자였고,…

옛 연인의 집에서 범인을 찾는 일 | MovieLAB LAB

옛 연인이 찾아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해달라고 한다. 의뢰를 받아들이면 그 여자도 의심해야 한다. 비뚤어진 집의 사립탐정 찰스 헤이워드가 맡은 일이다. 할아버지는 큰 부자였고, 여자는 유산을 받을 가족 중 한 사람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반가움과 사건을 맡은 책임이 처음부터 부딪힌다.

맥스 아이언스가 연기하는 찰스는 스테파니 마티니의 소피아를 따라 레오니데스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간다. 이 집에는 삼대가 함께 살고 있다. 한 사람씩 만날수록 가족이라는 말 뒤에 가려져 있던 사정이 나온다. 찰스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피아 역시 그 가족의 일원이다.

사건 바깥에 설 수 없는 탐정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질 파켓-브레너가 영화로 옮긴 이 이야기에서, 찰스와 소피아의 과거는 수사에 끼어드는 사적인 문제다. 의뢰인의 말을 확인하려면 연인이던 시절의 신뢰도 잠시 미뤄두어야 한다. 소피아가 할아버지를 설명할 때, 찰스는 가족에 관한 진술과 자신이 기억하는 여자를 함께 마주해야 한다.

찰스에게 소피아는 사건의 출발점인 동시에 확인해야 할 사람이다. 가까이 지내던 사이였기에 질문 하나도 단순한 사실 확인으로 끝나기 어렵다. 소피아의 가족에 관해 묻는 말에는 두 사람이 왜 헤어졌고 지금은 어떤 관계인지의 문제도 따라다닌다.

공적 수사를 맡은 태버너 경감은 테런스 스탬프가 연기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과 의뢰를 받고 들어온 옛 연인은 같은 가족을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만난다. 찰스에게는 진술 한마디가 자신의 과거까지 되묻게 할 수 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따지는 과정에, 나는 이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하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한 지붕 아래, 서로 다른 집

《비뚤어진 집》 스틸. 나무 패널과 다마스크 벽지, 고딕 아치가 있는 저택 실내 복도에서 모피 깃 코트에 스카프를 두른 여성과 회색 오버코트 차림으로 모자를 든 남성이 나란히 서 있다.

레오니데스 저택은 배경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방의 모습이 이 가족의 관계를 보여준다. 부호 아리스티드의 돈으로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 취향대로 꾸민 공간이 있다. 넓은 집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생활을 지키려 한다. 한곳에 산다는 사실과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 꼭 일치하지 않는 집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사이먼 볼스는 가족마다 별도의 거처가 있는 집을 구상했다. 배우인 마그다의 응접실에는 술 장식이 달린 커튼과 타조 깃털, 자신의 홍보 사진을 놓았다. 반면 로저와 클레멘시의 공간은 흰 벽과 당시 영국 미술품으로 꾸몄다. 방이 바뀌면 장식의 양과 색도 달라진다. 인물을 만나기 전부터 그들이 집 안에서 만들어놓은 차이를 볼 수 있다.

질리안 앤더슨이 연기하는 마그다의 방에 걸린 자기 사진은 특히 재미있다. 가족의 일원으로 사는 공간에 배우로서 보이고 싶은 모습도 전시돼 있다. 방은 쉬는 곳이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곳이 된다. 저택 전체를 설명하는 부자의 취향만으로는 각 방의 사연이 다 풀리지 않는 이유다.

볼스는 서로 다른 네 건물에서 찍은 실내를 문과 복도로 이어 한 채의 저택처럼 보이게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떨어져 있는 공간을 하나의 집으로 조립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을 찰스가 돌아다닌다. 가족을 차례로 만나는 일이 서로 다른 집을 방문하는 경험처럼 느껴지는 구성이다.

같은 가족이라고 부르기까지

《비뚤어진 집》 홍보 키아트. 붉은 얼룩을 배경으로 등장인물 일곱 명의 얼굴이 일렬로 합성돼 있고 하단에 'MISTERO A CROOKED HOUSE' 타이틀이 인쇄돼 있다.
주요 배우의 얼굴을 함께 배치한 홍보 키아트.

집안사람의 관계를 알아두면, 누가 아리스티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도 더 구체적으로 들린다. 가족 사업을 맡은 큰아들 로저에게 아버지는 가족의 어른이면서 생업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기도 하다. 손녀인 소피아가 아는 할아버지, 젊은 후처 브렌다가 아는 남편과는 관계의 성격부터 다르다. 같은 죽음을 이야기해도 각자가 잃은 것과 앞으로 달라질 생활이 다르다.

글렌 클로즈가 맡은 에디스의 자리는 이름만으로 짐작하기 어렵다. 에디스는 아리스티드의 첫 아내인 마르시아의 자매다. 소피아에게는 할머니의 자매이며, 첫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 집에 남아 가족의 어른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크리스티나 헨드릭스의 브렌다를 비롯해 저택 안의 사람들과 맺은 관계를 이 이력 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에디스를 단순히 집안의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보면 그가 지키려는 가족의 범위가 흐려진다.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과 뒤에 가족이 된 사람은 같은 집을 두고도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다. 누가 어느 편인지 성급히 정하기 전에, 그 사람이 누구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 이 영화의 또 다른 읽을거리다. 범인의 이름이 궁금해서 따라간 수사가 한 집안의 사정을 듣는 시간이 된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비뚤어진 집은 가족의 죽음을 조사하러 온 탐정이 그 가족과 자신의 관계까지 따져야 하는 이야기다. 옛 연인의 말은 낯선 사람의 진술처럼 듣기 어렵고,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집안 사정을 들려준다. 방의 장식과 인물 사이의 거리, 과거를 설명하는 말을 함께 따라가면 저택에 모인 용의자들이 각기 다른 생활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감상 포인트

소피아의 두 가지 자리
소피아는 일을 맡긴 의뢰인이며 조사 대상이 된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다. 찰스와 대화할 때 어떤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지 따라가보자. 과거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지금의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야 할 일을 흐리는지도 함께 볼 수 있다.

방마다 달라지는 취향
마그다의 장식 많은 방과 로저 부부의 흰 벽을 비교해보자. 가족이 같은 집 안에서도 각자의 생활을 따로 꾸려왔다는 차이가 보인다. 인물의 말과 그가 자신을 드러내려고 고른 물건이 얼마나 어울리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에디스가 알고 있는 가족
에디스는 아리스티드의 첫 아내 쪽 가족이다. 이 관계를 알고 그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자. 단순히 엄격한 어른으로 여길 때와, 오래전부터 이 집의 변화를 지켜온 사람으로 볼 때 받아들이는 말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가까이서 듣는 말의 어려움
태버너의 공식 수사와 찰스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나란히 보자. 찰스에게는 사적인 관계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같은 이유로 판단하기 어려운 정보도 있다. 그가 소피아를 대할 때와 다른 가족을 만날 때의 차이가 수사의 긴장을 만든다.

《Crooked House》 한국 개봉 포스터. 첨탑과 박공이 뒤틀린 대저택을 배경으로 어른 일곱 명이 한 줄로 서 있고, 왼쪽 앞에 카디건을 걸친 소녀가 두 손을 모으고 함께 서 있다. 위쪽에 나를 죽인 범인은 집 안에 있다라는 카피가, 아래쪽에 한글 제목 비뚤어진 집과 영문 제목 CROOKED HOUSE가, 맨 아래에 09.19가 인쇄돼 있다.

관련 작품

부탁 하나만 들어줘 (2018)
아이를 맡기고 사라진 친구의 행방을 한 여성이 찾기 시작한다.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조사의 대상이 되면서, 상대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따져야 한다. 옛 연인을 조사하는 찰스의 곤란함과 이어볼 만하다.

더 디너 (2017)
두 형제와 아내들이 자녀가 저지른 범죄를 두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화한다. 가족을 보호한다는 말이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다룬다. 비밀을 밝히러 들어가는 비뚤어진 집과, 이미 아는 비밀을 어떻게 처리할지 다투는 식탁을 비교할 수 있다.

아이 씨 유 (2019)
소년의 실종을 수사하는 형사의 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미 관계가 어긋난 가족에게는 함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일부터 어렵다. 사건을 판단할 때 사람 사이의 감정이 어떻게 끼어드는지 살필 수 있는 스릴러다.

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