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눈치를 보지 않도록 얼굴을 가린 감독 | MovieLAB LAB

배두나는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감독에게 이유를 물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배우들이 자기 표정을 흘끗 보며 눈치를 살피는 것이 싫다고 했다. 〈린다 린다 린다〉(20…

배우가 눈치를 보지 않도록 얼굴을 가린 감독 | MovieLAB LAB

배두나는 모자를 쓰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감독에게 이유를 물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배우들이 자기 표정을 흘끗 보며 눈치를 살피는 것이 싫다고 했다. 〈린다 린다 린다〉(2005)를 찍던 때의 일이다. 연기하는 상대를 봐야 하는데, 자꾸 감독의 반응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야마시타는 이 영화에서 문화제 공연을 준비하는 네 학생을 찍었다. 보컬이 빠진 자리에 한국에서 온 송이 합류하고, 남은 사흘 동안 함께 노래를 익힌다.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 감독은 무엇을 준비했을까. 수건으로 가린 얼굴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배우들을 만난 뒤 바뀐 각본이다.

배우를 만나고 달라진 학생

송은 처음부터 한국인으로 쓰인 인물이 아니었다. 야마시타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본 배두나를 떠올렸고, 배우가 합류하면서 일본인 학생이던 역할을 한국인 교환학생으로 바꿨다. 다른 배역들도 배우를 만난 뒤 성격을 고려해 다듬었다고 한다. 먼저 정해둔 네 학생에게 배우를 맞추는 것만으로는 영화가 완성되지 않았다. 함께할 사람이 정해지자 그 학생이 겪을 일도 달라졌다.

송이 혼자 연습하러 간 노래방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그렇다. 음료를 사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송은 이미 음료가 있다고 버틴다. 이 대목은 감독이 배두나를 만나러 한국에 왔다가 노래방의 차이를 알게 되면서 생겼다. 배두나가 전한 설명에 따르면, 그는 한국에서는 음료를 사지 않아도 노래방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익숙하던 일을 다른 나라에서 하려니 뜻밖의 조건이 붙은 것이다.

송은 자기 처지를 길게 설명하는 대신 눈앞의 요구에 대답한다. 노래 연습을 하러 왔는데 왜 음료를 또 사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이 작은 고집 덕분에 한국인이라는 설정에도 구체적인 생활이 생긴다. 낯선 곳에서 늘 주눅 들어 있는 사람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서툰 말로도 자기가 하려던 일을 해보려는 학생이다.

연습실에서 드럼과 기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학생들

먼저 함께 연습한 네 사람

그런 송이 밴드에 들어가려면 다른 세 사람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배두나는 촬영 전에 사무실을 빌려 배우들이 함께 대사를 맞추고 동선을 연습했다고 회고했다. 악기 연습도 있었다. 화면 속 학생들이 새 보컬과 곡을 익혀가듯, 배우들도 서로의 연주와 말을 들으며 준비했다. 배역끼리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기 전에 배우끼리는 이미 함께 해본 일이 생긴 셈이다.

네 사람의 출발점은 같지 않았다. 베이스를 맡은 세키네 시오리는 실제 밴드의 베이시스트였지만 연기 경험은 없었다. 야마시타는 그에게 많은 극적 연기를 요구하지 않도록 역할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악기를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과 연기에 익숙한 사람이 한 밴드를 만든다. 모두를 똑같은 초보로 보거나, 모두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고 여기면 이 준비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좁은 방에서 노래를 가르칠 때

〈가라오케 가자!〉에서도 낯선 두 사람이 노래 때문에 만난다. 이번에는 같은 학교 친구들이 아니다. 조직의 노래 대회를 걱정하는 야쿠자 쿄지가 합창부 학생 사토미에게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변성기를 겪는 소년에게도 노래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상대를 무서워하면서도 노래에 대해서는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하는 자리가 생긴다.

야마시타는 아야노 고, 사이토 준과 리허설을 하며 방금 좋았던 연기가 왜 좋았는지 함께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장면들이 좁은 노래방 안에서 벌어지니, 인물의 움직임을 크게 만들기도 어려웠다. 그만큼 두 배우 사이에서 생기는 분위기가 중요했고, 감독은 함께 연습한 시간이 촬영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아야노와는 이 영화가 사토미의 이야기라는 데 뜻을 모았다. 소년을 맡은 사이토가 잘 드러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야마시타는 아야노가 자기 배역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보면서 사이토를 도왔다고 회고했다. 노래를 배우러 온 어른을 연기하는 동안, 배우는 어린 상대와 함께 장면을 만들어가는 일을 맡았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린다 린다 린다〉에는 공연까지 사흘이라는 기한이 있다. 곡을 익혀야 하고 새 보컬과도 맞춰야 한다. 그런데 노래방의 음료 주문처럼, 연습만 빨리 하면 될 것 같은 순간에도 각자의 생활이 끼어든다. 공연의 성패가 궁금한 마음으로 시작해도 그 사이에 알게 되는 것은 네 사람의 성격이다. 어느 학생이 마음에 드는지 생각하다 보면, 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연주 실력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창문에 포스터가 붙은 실내의 네 학생. 왼쪽과 오른쪽 학생은 각각 베이스와 기타를 메고 있고, 가운데 학생은 마이크를 쥐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뒤로 드럼 앞에 앉은 학생이 보인다.

감상 포인트

◆ 송이 음료를 사지 않으려는 이유 — 노래방에서 송이 무엇을 하러 왔고 어떤 말에 막히는지 따라가보자.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미리 다 알아야 웃을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자기에게 이미 있는 것을 또 사라는 요구가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송이 남의 말을 알아듣는 데만 애쓰는지, 자기 생각도 전하려 하는지 보면 이 학생의 고집이 드러난다.

◆ 노래 이외에 궁금한 것들 — 문화제 공연이 목적이어도 네 사람의 대화가 늘 음악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송이 친구의 생활에 관심을 두는 순간도 살펴보자. 같은 곡을 연습하는 동료를 자기와는 다른 사정이 있는 사람으로 알아가는 시간이다. 말을 유창하게 하느냐보다 무슨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지 보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따라갈 수 있다.

◆ 각자 연습해야 하는 몫 —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은 한 곡 안에서도 하는 일이 다르다. 어느 악기가 더 능숙한지 순위를 매기는 대신, 자기 소리를 내는 때와 남의 소리에 맞춰야 하는 때를 함께 들어보자. 네 사람이 한 화면에 있다고 곧 하나의 밴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맞춰야 할 곡이 있다는 사실이 이 학생들을 얼마나 자주 같은 자리에 모으는지도 볼 만하다.

◆ 노래를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 — 〈가라오케 가자!〉까지 이어 본다면 사토미가 쿄지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비교해보자. 나이나 힘에서는 어른이 우위에 있지만, 노래를 배우겠다며 찾아온 쪽도 어른이다. 소년이 가르치는 자리에 앉았다고 두 사람이 대뜸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래에 관한 의견을 말하는 동안에도 남아 있는 거리감이 네 학생의 밴드와는 다른 재미를 만든다.

관련 작품

◆ 마이 선샤인 (2024, 오쿠야마 히로시) — 타쿠야는 사쿠라의 피겨스케이팅에 마음을 빼앗기고, 코치는 두 아이를 짝지어 대회를 준비한다. 하나의 동작을 함께 맞춰야 하는 시간이 생긴다. 노래와 스케이팅이라는 차이 속에서, 공동의 연습이 서로를 아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감춰두던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는 모습을 이어 볼 만하다.

◆ 플란다스의 개 (2000, 봉준호) — 배두나가 맡은 현남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다 사라지는 개들의 행방을 좇는다. 야마시타가 배두나를 다시 보고 싶어 했던 출발점이다. 무심해 보이다가도 한 가지 일에 빠져드는 현남을 송과 나란히 보면, 다른 나라와 다른 생활 속에 놓인 배우가 어떻게 인물의 성격을 달리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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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