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들이 기계를 배우기를 바란다. 자코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자란 소년에게도,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도 손으로 무언가를 다루는 일은 낯설지 …
아버지는 아들이 기계를 배우기를 바란다. 자코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자란 소년에게도,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에게도 손으로 무언가를 다루는 일은 낯설지 않다. 다만 그 손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다르다. 낭트의 자코는 훗날 감독이 되는 자크 드미의 어린 시절을 따라간다. 이 기억을 영화로 만든 사람은 그의 아내이자 동료 감독인 아녜스 바르다다.
자코는 인형극과 오페레타에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아직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보다 보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다. 관객은 이 소년이 감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소년에게 영화는 우선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바르다는 그 즐거움을 다 완성된 재능의 증거로 서둘러 정리하지 않는다.
정비소와 가족의 생활, 전쟁과 전후의 시간이 그 관심 곁에 있다. 자코가 영화에 빠져 있다고 주변의 사정이 멈추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권하는 기계 공부와 자코가 하고 싶은 일도 쉽게 일치하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곧 그것을 계속할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 얻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소년이 카메라를 얻고 직접 영화를 만들려는 과정은 단순한 장래 희망 소개보다 흥미롭다. 보던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순간에는 할 일이 생긴다. 눈앞의 광경을 카메라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영화는 자코의 꿈을 말로만 설명하는 대신 그 관심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이라는 직업을 모르는 관객도 무언가에 빠져 손을 움직여본 기억으로 따라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재연 사이에는 드미가 나중에 만든 영화의 장면들이 끼어든다. 시간 순서대로 성장기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그 아이가 완성한 작품을 보게 된다. 과거의 한 장면과 훗날의 영화가 편집으로 가까워지는 것이다. 감독의 작품을 많이 아는 관객에게는 연결을 알아보는 즐거움이 있고,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소년이 좋아했던 것이 훗날 작품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엿보는 기회가 된다.
이 연결을 드미 영화의 모든 장면에 대한 정답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릴 때 겪은 일 하나만으로 훗날의 작품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어릴 때 좋아했던 광경이 오래 남아 훗날 다른 형태로 돌아올 수 있다는 감각은 생긴다. 흑백과 컬러, 재연과 이미 완성된 영화가 오가는 구성은 한 사람의 생애를 곧은 연대표로 만들지 않는다. 시간을 건너뛸 때마다 어린 자코와 감독 드미를 함께 보게 한다.

여기에 또 다른 드미가 있다. 촬영 당시 병중이던 드미다. 바르다는 그의 머리카락과 피부, 얼굴을 아주 가까이 찍었다. 배우들이 연기한 어린 시절과 달리 이 몸은 그때 카메라 앞에 있었다. 소년의 미래를 알고 보는 동안, 관객은 그 미래를 이미 살아낸 사람과 마주한다.
얼굴을 가까이 찍는다고 인물의 내면까지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이름이나 경력보다 피부와 머리카락의 결이 먼저 들어온다. 드미가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소개하는 데 꼭 필요하지는 않은 모습들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려는 카메라에는 그 모습이 중요하다. 작품 목록으로는 남길 수 없는 것을 찍고 있다.
소년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반가워하다가도, 병중인 드미를 가까이 보면 그 모습을 남겨두려는 바르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남편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과 지금 카메라 앞에 있는 모습 모두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이 영화는 병중의 드미가 적어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바르다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고향 낭트에서 촬영했고, 드미가 자란 집도 영화에 담았다.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를 아내가 카메라와 배우와 장소를 통해 다시 만드는 작업이었다. 기억의 주인과 영화의 감독이 다르다는 점이 이 작품의 중요한 조건이다.
바르다가 어린 드미의 생활을 직접 겪었던 것은 아니다. 드미도 스스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연기할 수는 없다. 두 사람 사이를 영화가 이어준다. 바르다는 드미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와 장소를 구해 어린 시절을 재현한다. 동시에 그 기억을 전해주는 현재의 드미도 찍는다. 〈낭트의 자코〉는 다른 사람의 삶을 찍는 일이 얼마나 사적인 협업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드미의 영화를 잘 몰라도 소년이 구경하던 것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마음은 따라갈 수 있다. 그 소년의 시간을 찍은 영화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피부와 머리카락에 오래 머문다. 영화 만드는 즐거움과 누군가를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경험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 정비소에서 자라는 소년 — 아버지가 바라는 기계 공부와 자코가 좋아하는 영화 만들기를 함께 볼 만하다. 소년에게 재능이 있는지만 묻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시간과 기회를 어떻게 얻는지 따라갈 수 있다.
◆ 흑백과 컬러가 바뀌는 순간 — 성장기를 재연한 장면, 드미의 영화에서 가져온 장면, 촬영 당시 드미의 모습이 오간다. 색이 바뀔 때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면 단순한 과거와 현재의 구분보다 복잡한 구성을 이해하기 쉽다.
◆ 중간에 들어오는 드미의 영화 — 소년의 이야기 사이에 훗날 완성한 작품이 등장한다. 앞에서 자코가 보고 즐겼던 것과 어떤 점이 닮았는지 찾아보면, 전작을 잘 몰라도 편집이 이어주는 관계를 알아볼 수 있다.
◆ 머리카락과 피부를 찍은 화면 — 실제 드미를 아주 가까이 찍은 장면에서는 경력보다 한 사람의 몸이 먼저 보인다. 어린 시절의 재연과 이 화면을 함께 보면 바르다가 남편에 관해 무엇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2008, 아녜스 바르다) — 이번에는 바르다가 자신의 기억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삶을 설명하는 것과 기억을 영화로 만드는 일의 차이를 이어서 볼 수 있다.
◆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2000, 아녜스 바르다) — 바르다는 자신이 든 카메라로 자신의 손도 찍는다. 타인의 몸을 보던 가까운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모습을 비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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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