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너머의 여자들이 손을 뻗는다. 얼굴은 일그러졌고 이빨이 드러나 있다. 위험한 괴물을 가둔 곳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창살 밖에 있다. 흰 수술복을 입…
창살 너머의 여자들이 손을 뻗는다. 얼굴은 일그러졌고 이빨이 드러나 있다. 위험한 괴물을 가둔 곳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들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창살 밖에 있다. 흰 수술복을 입고 실험을 계속하는 과학자다. 리처드 E. 컨하의 〈She Demons〉은 무서운 얼굴을 보여준 뒤 그 얼굴이 왜 생겼는지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얼굴에 쏠렸던 눈이 여자들을 가둔 자물쇠로 옮겨간다.

폭풍을 만나 배가 부서진 일행이 외딴 섬에 도착한다. 부잣집 딸 제리 터너와 탐험가 프레드, 무전사 새미가 섬을 돌아보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여성을 가둔 우리와 비밀 실험실이 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실험을 이어가는 나치 과학자 카를 오슬러가 이곳을 지배한다.
오슬러가 내세우는 목적은 아내 모나의 치료다.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은 아내의 외모를 되돌리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다른 여성들의 몸이 동원된다. 모나의 외모가 잠시 회복되는 동안, 실험 대상이 된 여성들은 일그러진 얼굴을 떠안는다. 한 사람을 치료하겠다는 설명에는 다른 사람의 피해를 멈출 생각이 없다.
루돌프 앤더스가 연기하는 오슬러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실험으로 설명한다. 전쟁 중의 잔혹한 행위에도, 섬에서 벌이는 일에도 이유를 붙인다. 그 이유를 듣고 있으면 그가 누구의 고통에만 관심을 두는지 보인다. 아내의 얼굴은 되돌려야 할 것이지만, 여성들에게 생긴 변화는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감수할 일로 처리된다.
흰 수술복과 모자를 쓴 남자,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아내가 실험실에서 마주 선다. 한쪽은 무엇을 할지 설명할 수 있고, 다른 쪽은 그 결과를 기다린다. 앞에서 본 창살 속 여성들에게는 자기 사정을 말할 기회조차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이 셋을 함께 보면 치료한다는 말만으로 오슬러의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섬의 위협은 실험실 안에만 있지 않다. 하늘에 비행기가 나타났을 때 제리는 구조대라고 여긴다. 그러나 새미가 무전으로 들은 것은 폭격 훈련 계획이다. 비행기는 이들을 찾으러 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취급되는 섬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살려달라는 말을 전하기도 어렵다. 일행이 건진 무전기는 소식을 받을 수 있지만 송신은 하지 못한다. 바깥세상은 들리는데 자기 목소리는 전할 수 없는 상태다. 고립된 섬이라는 설정이 이 작은 고장으로 구체화된다. 멀리 있는 위험을 알아도, 그것을 막을 사람에게 여기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상황은 영화의 속도를 바꾼다. 숲을 돌아보며 비밀을 알아내는 동안에도 외부의 계획은 진행된다. 섬 안에서 길을 찾는 일과 섬 밖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이 겹친다. 비행기가 보이면 반가워야 하고 무전 소식이 들리면 안심해야 할 것 같지만, 이들에게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생긴다.
아이리시 맥칼라의 제리는 처음부터 침착한 생존 전문가로 나오지 않는다. 난파당한 상황을 못마땅해하고 프레드에게 섬을 벗어날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한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누군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태도로 낯선 곳에 도착한 인물이다. 섬에서는 그 익숙한 요구가 통하지 않는다.
제리가 맥칼라의 앞선 배역인 〈시나, 정글의 여왕〉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이 시작을 놓치기 쉽다. 정글의 여왕으로 알려진 배우가 여기서는 낯선 섬에 표류한 부유한 집안의 딸을 연기한다. 섬을 지배하던 이미지와 섬을 모르고 들어온 인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 배우의 전작을 모르더라도 제리의 첫 반응을 보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남자들이 섬을 돌아보러 나설 때 함께 가겠다고 고집한다. 남아 있으라는 상황에서 따라나서는 결정이다. 일행은 길을 잃기도 하고 위험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래도 제리가 위협을 직접 보고 판단할 자리에 들어간다는 점은 중요하다. 영화가 그에게 언제 말할 기회를 주고 언제 행동을 맡기는지 따라가면, 단순히 구출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설명을 넘어설 수 있다.

〈She Demons〉는 섬의 비밀을 과학자의 긴 설명으로 풀어낸다. 설명이 늘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 말을 처음의 창살 장면과 겹쳐보면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실험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말할 수 있고, 실험당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과 몸짓으로 먼저 소개된다. 누군가는 설명할 권한까지 갖고 있다는 점이 꺼림칙하다.
괴물의 외모를 볼거리로 내세운 영화 안에서 그 외모가 만들어진 이유를 함께 보는 경험이다. 분장이 얼마나 그럴듯한지만 따지면, 여자들이 왜 가두어져 있는지는 뒤로 밀린다. 한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돌려주겠다며 다른 사람의 몸을 망가뜨리는 모순은 소박한 세트 안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 더 바이올런트 이어스 (1956) — 윌리엄 M. 모건 감독. 여성 청소년들의 범죄를 다루면서 해설자가 처음부터 훈계의 기준을 제시한다. 〈She Demons〉와 상황은 다르지만, 여성 인물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고 그 행동을 누가 설명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두 영화의 해설과 등장인물 사이 거리를 살펴볼 만하다.
◆ 죽지 않는 두뇌 (1962) — 조지프 그린 감독. 의사가 약혼녀를 살리겠다며 다른 여성의 몸을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목적이 타인에게 무엇을 해도 된다는 허락으로 바뀌는 과정이 이어진다. 도움을 받는 당사자가 원하는 것과 실험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도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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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