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로너건, 옆자리의 대화도 들리는 영화 | MovieLAB LAB

〈마가렛〉 확장판의 식당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리사가 친구 데런과 나누는 대화보다 옆자리 여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리사에게는 괴로운 일이 있고, …

케네스 로너건, 옆자리의 대화도 들리는 영화 | MovieLAB LAB

〈마가렛〉 확장판의 식당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리사가 친구 데런과 나누는 대화보다 옆자리 여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리사에게는 괴로운 일이 있고, 데런은 그 속사정을 모른다. 관객은 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데 식당은 조용해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해서 다른 손님들이 자기 말을 멈춰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케네스 로너건은 대사를 잘 쓰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의 묘미는 좋은 대사를 또렷하게 들려주는 데 있지 않다. 누구의 목소리를 크게 할지 정하는 일에도 있다. 무대와 영화를 오가며 그는 인물에게 할 말을 주고, 그 말이 상대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 상황까지 만든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과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탁자 건너편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리사

잘 쓴 문장이어도 그 사람이 할 말인가

극작가 로너건에게 대사를 쓰는 일은 가장 즐거운 작업이다. 다만 문장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만으로 남겨두지는 않는다. 사람이 실제로 할 법하지 않은 말, 아름답거나 시적으로 보이려 애쓰는 말은 지운다고 했다. 그렇다고 인물의 말을 모두 밋밋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인 말투 안에서 재치 있는 표현이 떠오르면 기꺼이 쓴다. 작가의 솜씨 때문에 인물의 입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두서없을 때에도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분명할 수 있다. 〈유 캔 카운트 온 미〉의 새미는 아들을 키우며 고향에 살고, 동생 테리는 떠돌다가 누나를 찾아온다. 테리는 조카와 가까워지지만 그가 누나의 생활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생긴다. 동생을 돕고 싶은 마음과 아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새미에게 함께 있다.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쪽이 시원하게 정리되는 관계가 아니다.

로라 리니가 맡은 새미와 마크 러팔로가 맡은 테리를 가족의 모범과 골칫거리로만 나누면,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상당 부분을 놓친다. 새미는 동생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만큼 자기 생활을 위협받는다. 테리에게 조카와 가까워지는 일은 누나의 부담을 덜어주는 도움일 수도, 누나가 감당해야 할 또 다른 문제일 수도 있다. 같은 행동을 두 사람이 다르게 받아들이니 대화가 쉽게 끝날 수 없다.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어른 두 명과 아이

로너건이 자기 인물을 패배자라고 부르는 데 동의하지 않은 것도 이와 통한다. 그런 이름을 붙이면 그 사람의 앞날까지 정해진 듯해진다는 이유였다. 대사가 서투르거나 계획이 자꾸 어긋난다고 해서, 그 인물에게 더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먼저 판정을 마쳐버리기 쉬운 사람에게 로너건은 말할 시간을 더 준다.

리사에게 사건이 생겨도 수업은 계속된다

〈마가렛〉의 리사는 큰 사고와 마주한 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사건만을 해결하러 곧장 나아가지 않는다. 학교에 가고, 가족과 말을 주고받고,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생활이 이어진다. 로너건은 한 사건이 주인공의 삶 전체를 집어삼키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건 이후에도 인물이 하루 종일 그 사건에 대해서만 말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 관심은 리사를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뻗어나갔다. 식당의 옆자리 대화는 우연히 마이크에 들어온 소음이 아니다. 로너건은 대본에서부터 서로 다른 대화를 나란히 적었다. 각자의 목소리를 따로 녹음하고 크기를 조절하면서, 리사와 데런에게 가까워지기 전에는 둘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의 귀가 주인공에게만 붙어 있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이 식당에서 옆자리 사람들은 리사를 방해하려는 악역이 아니다. 자기 식사를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런데 리사에게 마음이 가 있는 관객에게는 그 평범한 대화조차 답답하게 들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쉬워도, 지금 꼭 듣고 싶은 목소리를 놓칠 때 그 말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애나 패퀸의 리사는 그 안에서 마음이 앞서 나가는 인물이다. 자신에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세상은 다른 일도 처리해야 한다. 이 차이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한마디로만 설명하면, 실제로 남는 답답함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마가렛〉은 상대가 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따지는 시간과, 상대에게도 따로 중요한 일이 있음을 마주하는 시간을 함께 길게 둔다.

대본에 없던 일이 더 정확할 때

그처럼 대사를 세밀하게 쓰는 감독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계획대로 돌려놓지는 않는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찍을 때 구급 침대가 제대로 접히지 않아 구급차에 잘 들어가지 않는 일이 있었다. 로너건은 카메라를 계속 돌렸다. 다시 찍었을 때는 더 오래 걸렸다. 원래 각본에 없던 일이었지만 그 불편한 시간을 영화에 남겼다.

누군가가 괴로워하고 있어도 물건이 갑자기 말을 잘 듣게 되지는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매끄럽게 움직여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작은 지체가 더 견디기 어려워진다. 로너건은 고통스러운 사람을 위해 세상 전체가 멈춰서 기다리는 장면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구급 침대가 뜻대로 접히지 않은 일은 고통에서 잠깐 쉬어가는 농담이라기보다, 그 고통 속에서도 처리해야 하는 일에 가깝다.

형을 잃은 리와 아버지를 잃은 패트릭이 함께 지내게 되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도 슬픔은 두 사람의 하루를 똑같이 만들지 않는다. 리는 조카를 어떻게 돌볼지 정해야 하고, 패트릭에게는 고향에서 이어가던 관계와 활동이 있다. 케이시 애플렉과 루카스 헤지스가 맡은 두 사람은 같은 상실을 겪으면서도 당장 원하는 것이 다르다. 함께 슬퍼한다고 해서 생활의 결정까지 저절로 합의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감독의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에 관한 영화로 기대하면 인물의 머뭇거림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로너건의 다른 작업과 함께 보면 그 머뭇거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보인다.

이 감독은 이야기가 끝날 때 인물의 삶 전체까지 해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왔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마무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가 붙잡았던 문제를 끝까지 다루되, 그 뒤의 생활까지 정리해서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남매가 다시 만나면 어떻게 지낼지, 돌봄을 둘러싼 대화를 또 해야 한다면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해진다. 인물들이 좋은 말로 화해했는지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들을 얼마나 알게 됐는지 돌아보게 된다.

감상 포인트

누가 더 크게 들리는가 — 〈마가렛〉 확장판의 식당에서 귀가 어느 테이블로 가는지 따라가보자. 주인공에게 집중하고 싶은데 다른 말이 들어오는 경험은, 리사의 괴로움을 이해하면서도 그가 사는 장소에는 여러 사람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대사의 내용만큼 목소리의 크기와 거리가 중요한 장면이다.

같은 도움, 다른 생각 — 〈유 캔 카운트 온 미〉에서 테리가 조카와 가까워질 때 새미의 처지도 함께 생각해보자.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걱정이 될 수 있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가 언제 어긋나는지 살피면, 남매의 말다툼에서 각자가 지키려는 것을 알아가기 쉽다.

감정과 실무가 부딪힐 때 —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인물들이 슬픔에 관한 말을 하다가 생활의 결정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보자. 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같은 문제는 감정을 방해하는 잡일로만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그 대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말을 마치지 못한 이유 — 로너건의 영화에서 대화가 겹치거나 끊길 때에는 왜 끊겼는지 살펴보자. 말을 고르는 중인지, 상대가 이미 답을 정했는지, 서로 다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대화를 잠깐 천천히 들어보면 인물 사이의 어긋남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관련 작품

〈유 캔 카운트 온 미〉 — 케네스 로너건의 첫 장편. 로라 리니와 마크 러팔로가 서로를 잘 알면서도 함께 지내기 어려운 남매를 연기한다. 남을 돌보는 일과 자기 생활을 지키는 일이 언제 충돌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마가렛〉 — 케네스 로너건이 도시의 여러 목소리를 넓게 담아낸 영화. 이 글에서 다룬 식당의 소리와 생활의 곁가지를 따라가려면 감독이 선호한다고 밝힌 확장판이 적합하다. 주인공 주변의 사람에게도 귀를 기울일 시간이 넉넉히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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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