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란 안 훙에게 푸른 파파야는 집안의 여성들이 따고 씻고 껍질을 벗기던 기억과 함께 남아 있다. 〈그린 파파야 향기〉를 소개하면서 그가 떠올린 것도 그 손길이었다. 먹음직스러운 …
트란 안 훙에게 푸른 파파야는 집안의 여성들이 따고 씻고 껍질을 벗기던 기억과 함께 남아 있다. 〈그린 파파야 향기〉를 소개하면서 그가 떠올린 것도 그 손길이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한 접시보다, 그것을 마련하던 사람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다. 데뷔작의 부엌에서 〈프렌치 수프〉의 주방까지 이어지는 관심을 여기서 짚어볼 수 있다.
이 두 영화에서 음식은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몸과 함께 보인다. 재료를 다루고 불 앞에 서고 식탁으로 옮기는 동안에는 음식뿐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트란 안 훙은 그 사람을 어디에 세우고 카메라를 어떻게 움직일지 공들여 정한다. 조용해 보이는 부엌을 만드는 데도 꽤 많은 준비가 들어간다.
〈그린 파파야 향기〉는 소녀 무이가 한 집에서 일을 배우며 지내는 이야기다. 사이공을 배경으로 하지만 촬영은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했다. 감독은 베트남 답사에서 원하는 집을 찾기 어려웠고, 세트를 지으려던 시기에는 우기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공동제작의 조건까지 겹치면서 파리에서 찍기로 했다. 고향을 그대로 복원하겠다는 마음 하나로만 설명하기에는 실제 제작의 사정이 여럿 있었다.
스튜디오로 옮겼다고 식물이 뜻대로 자라준 것도 아니었다. 촬영을 위해 들여온 파파야나무가 죽자, 줄기에 인조 잎을 붙여 다시 만들어야 했다. 살아 있는 풀과 벌레를 두고 집 안팎의 풍경을 꾸리는 일은, 벽과 가구를 배치하는 일과 또 달랐다. 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있는 듯한 것들이 촬영장에서는 서로 다른 돌봄과 손질을 필요로 했다.
트란 안 훙은 이 집을 찍을 때 창틀이 화면 안에 다시 틀을 만들도록 하고, 그 너머의 배경을 흐리게 두어 깊이를 얻으려 했다고 말했다. 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까이 있는 사람과 그 뒤의 물건들이 어떻게 겹쳐 보일지 생각한 것이다. 인물이 있는 자리만큼 그 너머로 무엇이 보이는지도 중요해진다.
〈프렌치 수프〉에서도 집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간다. 요리사 외제니와 미식가 도댕은 오랫동안 함께 일했고 서로 사랑하지만, 외제니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쥘리에트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이 맡은 두 인물은 함께 요리하는 동안 익숙한 동료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익숙함을 배우들이 마음껏 움직이는 것만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촬영에 앞서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음식을 만들었다. 트란 안 훙은 그것을 보면서 어떤 요리가 화면에 담기에 흥미로운지 파악했다. 현장에서는 미셸 나브가 음식 준비를 이어받았다. 조리 과정이 눈앞에 있어야 감독도 배우와 카메라가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사람의 동선을 맞췄다. 감독은 외제니가 음식을 담는 동안 다른 인물들이 무엇을 하는지, 움직이는 사람이 어떤 도구를 들고 있는지까지 준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카메라는 한 대였다. 화면 밖에 있던 배우도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안 자신이 들어갈 때를 맞춰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음식을 다루는 순간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 곁을 지나갈 시간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손만 따라가다가도 다른 사람의 일이 같은 화면에 들어올 수 있다. 이 주방을 볼 때 완성된 요리만큼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 과정이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사이라는 설정이, 말로 설명하기 전에 몸의 배치로 드러날 수 있다.
음식과 사람을 둘러싼 옷에도 손길이 닿았다.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자란 무이를 연기한 트란 누 옌 케는 〈프렌치 수프〉에서 의상과 아트 디렉션을 맡았다. 그는 옷이 손으로 만들고 오래 입은 것처럼 보이기를 원해 일부러 해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대극의 화면이 너무 반듯한 엽서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려는 선택이었다.
감독은 준비 과정뿐 아니라 촬영할 때도 트란 누 옌 케를 모니터 곁에 두었다고 말했다. 그가 화면에 들어오는 것들의 균형을 살폈기 때문이다. 옷을 하나씩 잘 만드는 일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과 공간을 함께 놓았을 때 어울리는지 보는 역할이었다.
요리를 오래 해온 사람에게 막 꺼내 입은 듯한 옷을 입히면, 손의 능숙함과 몸에 걸친 천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옷을 낡게 만드는 선택은 인물에게 촬영 이전의 생활을 붙여준다. 이 주방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 아니라, 여기서 매일 일해온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준비다.

트란 안 훙의 영화를 음식의 아름다움으로만 기억했다면 그 주변의 일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접시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사람이 움직이고, 카메라가 그 움직임을 따라가며, 옷과 도구가 그 사람의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그린 파파야 향기〉의 집과 〈프렌치 수프〉의 주방을 나란히 보면, 재료를 손질하는 사람을 공간 안에 담으려는 감독의 관심을 서로 다른 작업에서 만날 수 있다.
◆ 한 사람의 손, 다른 사람의 일 — 외제니가 음식을 다루는 동안 주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두어보자. 다른 사람이 어떤 도구를 들고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함께 보인다. 각각의 행동이 어떤 순서로 이어지는지 따라가면 능숙한 요리사의 개인기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관계가 보인다. 완성된 접시가 나오기 전, 주방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추는 시간이 있다.
◆ 사람이 지나갈 자리 — 부엌의 작업대와 문, 방 사이의 길을 인물의 움직임과 함께 보자. 무엇을 어디에 놓았는지는 그 안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바꾼다.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갈 때와 주위까지 보여줄 때, 앞서 보이지 않던 다른 사람이나 공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볼 만하다. 예쁜 집이라는 첫인상에서 더 나아가, 그 집에서 일하는 몸을 담는 구도를 살펴볼 수 있다.
◆ 주방에 남는 소리 — 재료가 익거나 도구가 닿을 때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감독은 음식과 물, 불, 나무와 금속이 내는 소리가 인물의 일상을 붙잡아준다고 설명했다. 화면에서 보던 물건에 소리가 더해지면 그것을 다루는 일에도 관심이 간다. 고기가 익는 소리와 도구가 맞닿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 눈앞의 한 요리 너머에서 진행되는 일도 짐작해볼 수 있다.
◆ 인물의 옷에 남은 생활 — 비노쉬와 마지멜이 움직일 때 몸에 걸친 옷도 함께 살펴보자. 의상을 따로 전시해놓은 것처럼 보기보다 일하는 자세와 공간 안에서 보면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사람이 여기에 오래 머물렀다는 느낌을 옷이 어떻게 돕는지 볼 만하다. 감독이 트란 누 옌 케에게 맡긴 것은 옷 하나뿐 아니라 화면 속 사람과 사물 사이의 어울림이기도 했다.
◆ 앙: 단팥 인생 이야기 (2015, 가와세 나오미) — 도라야키 가게에서 일하게 된 도쿠에의 팥소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음식을 잘 만든다는 말이 그 사람의 삶을 충분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만드는 손과 그 손의 주인을 함께 보게 하는 영화다.
◆ 빛나는 (2017, 가와세 나오미) — 영화의 화면을 말로 전하는 일을 하는 미사코와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가가 만난다. 한 감각의 경험을 다른 방법으로 건네려 할 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놓치는지, 맛과 냄새를 화면에 담는 작업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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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